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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피디아3] "아빠,힘내세요~" 이젠 그만! 이 시대 마미옴므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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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옴므(Mommyhomme)=회사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하는 남자. 맞벌이 가정이 대세인 시대. 남편도 육아와 집안 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엌이라면 손사래 치던 남자들이 앞치마를 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중앙일보 온라인 편집국은 이를 '마미옴므(MommyHomme)'로 정의했습니다. '엄마(Mommy)'와 '남자(Homme)'를 조합한 단어입니다.

[자료 사진=중앙일보 DB]

#1. 오전 8시. 직장인 김재홍(가명)씨가 말끔하게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맸다. 그리곤 허리춤에 아기띠를 채웠다. 15개월된 아들을 안고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 맡기기 위해서다. 처음엔 멋쩍었다. 부끄럽기도 했다. 막상 애와 함께 어린이집에 가니 그렇게 많은 '동병상련'이 있는지 몰랐다. 속으로 '아내가 다른 남편들이 애를 데리고 오는 모습을 보고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라는 생각에 참 민망했다. 김씨는 "일찍 출근하는 아내 대신 아기에게 아침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에 온 아빠들 표정은 참 밝았다. 회사에 대한 걱정이 어떻든 간에….

#2."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오후 6시 30분. 박세진(가명)씨가 동료들을 뒤로 하고 빠져 나왔다. 일하는 동료·선배·후배를 두고 돌아서기에는 뒤가 서늘했다. 하지만 가족이 급하다. 정보통신(IT)업체에 다니는 아내가 야근하는 날이라 오늘은 어린이집에 맡긴 아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 겨우 세살배기다.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라야 하는 아이를 맞벌이라는 이유로 팽개쳐 놓는 것 같아서 퇴근시간이면 아이가 무조건 우선이다. 그럴 때면 회식? 웃기는 소리다. 박씨는 "양가 어른들이 지방에 살고 계셔서 아이를 맡길 수 없다"며 "종종 야근하는 아내 대신 일찍 퇴근해 설거지를 하거나 목욕을 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구조조정이니, 일과 가정의 양립이니'라는 소리를 들으면 내가 전자인지, 후자인지 헛갈린다. 회사와 아이의 마음 사이에서 남자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3. 총론=괴롭다. 눈치도 늘어만 간다. 아내의 눈치, 처가의 눈치, 회사의 눈치,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머리 속에서 나도 모르게 돌아가는 계산적인 컴퓨터. 예전엔 안 그랬다. 가장의 권위가 통하던 시대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집에 가다 전화를 받고 마트로 차를 돌려 장보러 가야 한다. 그래야 가정이 편하다. 한가지, 아내는 남편의 이런 고충을 이해한다. 반면 유독 회사는 눈총을 준다. 그래서 회사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아내에게 짜증을 내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아내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내게 짜증을 낼 때면 '또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구먼'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엔 '우리가 가정이 있는 거야? 회사가 내 가정의 정체성까지 만드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도 스친다.

이런 얘기를 하면 '회사 그만두라'는 식으로 흐르는 게 지금 한국사회다. 회사에서 돈 벌려면 충성해야 하는데, 그러다 '나이 들면 황혼이혼 당하는 거 아냐?' 참 복잡해 진다.

이 시대 아버지는 '마미옴므(MommyHomme)'다. '아빠 힘내세요~'를 듣고 돌아서면 '이제 힘내라는 말 그만 했으면…'싶다. 가족이라는 농장을 지키려는 마음은 굴뚝 같은데 그 농장을 둘러싼 외부환경이 참 깊숙하게 농장에 들어와있다.

육아 체험 행사에 참가한 아빠가 모유 수유 체험을 하고 있다. [출처=중앙일보 DB]



◇내가 어디 출근하는 거지? 집이야, 회사야?= 워킹맘에게 일과 가정의 양립은 풀기 힘든 과제였다. 파김치가 된 몸으로 집에 와서 애 챙기랴, 청소·빨래하랴. 남편들은 "도와준다"고 말만 할 뿐 슬쩍 피하기 일쑤다. 남자에게 육아와 가사는 일종의 금기나 다름없었다. 회식이나 술자리에 끼지 않으면 소위 말하는 '사회생활'이 뭔지…. 그래서 눈을 감아줬다.

그러나 이젠 아내도 경제활동인구에 급속하게 편입되기 시작했다. 남편의 벌이로는 솔직히 교육비 대기도 힘들다. "돈을 제대로 벌어다 줘봐!" 고함치는 세대는 어머니·아버지의 세대다. 그래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뛰어든 이상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다. 아빠도 안다.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던 아빠들이 하나 둘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13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국내 대형 육아카페 '맘스홀릭(http://cafe.naver.com/imsanbu)'엔 최근 '아빠들의 수다방'이 따로 생겼다. 국내 육아관련 카페와 트위터 모임에도 아빠들의 절절한 육아 고민 상담 글이 잇따르고 있다. 육아 휴직을 문의하는 남성의 글이나 "평일엔 일하는 아내를 돕느라 지쳐있는데 주말엔 가까이 사는 처가에 가야 하니 삶이 피곤하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한다"는 고충의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엄마에 초점 맞춰져 있다는 게 아빠들의 고민이다. 얼마 전 한 남성 인기 개그맨이 TV에 나와 "애 보랴, 밥하랴 바쁘다. 손에 물 마를 새가 없다"고 털어놓은 고충은 이제 더 이상 우스개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가정과 회사의 경계를 허물다=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미혼 남녀들은 맞벌이를 원한다. 최근 모 취업 포털이 미혼남녀 646명을 대상으로 ‘결혼 후 맞벌이 계획’ 여부를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에 해당하는 85.1%가 ‘맞벌이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맞벌이를 원한다는 응답자는 여성보다(82.0%) 남성(88.6%)이 더 많았다.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에서였다.

이러다 보니 가정에서 여성이 담당하던 것을 남자도 의무적으로 분담해야 한다. 육아든, 설거지든, 청소든…. 그래서 마미옴므는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됐고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남성 회사원을 겨냥한 가정용품도 많이 출시됐다. 로봇청소기의 매출이 올라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남자가 분담할 일을 손쉽게 처리해주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국 맞벌이 부부 1500명을 대상으로 이상적인 부부의 취업형태에 대해 온라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0%가 "현재보다 근로시간이 줄어든다면 자녀와 더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답했다. 직장에 나가 돈을 벌면서 집에서도 좋은 아빠, 좋은 엄마가 되려면 정부와 기업의 현실적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김진백 교수는 "1970년대 태어나 외환위기와 정리해고를 목격한 우리나라 'X세대'들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도 강하지만 무엇보다 가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회사가 일방적으로 가정의 삶을 희생하기 원한다면 젊은 세대들은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회사에 충성심과 일하려는 동기를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킹맘과 마미옴므가 늘면서 기업도 일과 가정의 균형을 인사 관리의 주요한 항목으로 삼은 지 오래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가 2010년부터 자율 출근제를 실시한 이유도 직장과 가정에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춰 업무 집중도를 높이고 창의적 발상을 장려하기 위해서였다"며 "직원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고 결국 그룹 내 계열사로도 확대 적용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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