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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 자살 공무원 잇단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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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북 경산시는 대학도시다. 4년제 8곳에 전문대학 4곳, 대학만 12곳이 있다. 대학생 수는 11만 명으로 경산시 인구 24만7300여 명의 절반에 육박한다. 대학생이 많다 보니 학구적이고 활기가 넘치는 도시다.

 하지만 지금, 경산시의 분위기가 흉흉하다. 비리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던 경산시청 과장 김모(54·5급)씨가 지난 4일 자살한 뒤부터다. 1000여 시 공무원은 일손을 잡지 못한다. 유서에 이어 김씨가 작성했다는 문건이 공개되면서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고 있어서다. <중앙일보 4월 6일자 4면>

 애초 공개된 김씨의 유서에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검찰 측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검찰의 강압수사가 논란이 됐다. 유서에는 ‘최병국 시장님 힘내십시오’라는 등 경산시장을 옹호한 부분이 있었다. 김씨와 최 시장은 고향 마을에서 함께 자란 친구 사이다. 김씨는 업무능력이 뛰어나 최 시장의 신임을 얻었고 측근으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김씨가 작성했다는 문건은 정반대였다. 김씨의 지인 오모(51·부동산 중개업)씨는 김씨가 썼다는 A4용지 한 장짜리 문건의 원본을 검찰에 제출하고, 사본을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 과장, 시장 딸 결혼식 때 축의금 1000만원’ ‘△△△ 계장, 개인 돈 3000만원을 업무추진비로 시장에게 지급함’ 등의 경산시장을 비난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오씨는 지난달 말 이 문건을 김씨로부터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대검 감찰팀에서 원본에 대한 필적감정 중인데 김씨가 쓴 문건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스터리’는 또 있다. 김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A4용지 25쪽 분량의 장문의 유서를 썼지만 가족 앞으로는 어떤 글도 남기지 않았다.

 강압 수사 주장에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김씨는 2일 작성한 유서에 ‘(1일 조사받았던) 1403호 검사에게 뺨 세 대를 맞고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귀가 멍해 오늘 아침 병원 다녀왔다’고 적었다. 실제 김씨는 지난 2일 오전 경산시의 한 이비인후과를 찾아 진료를 받았다. 정모 원장은 “김씨가 ‘어제 다쳤다’고 해 보니 왼쪽 귀 안에 염증과 진물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김씨가 진단서를 요구하지 않았고, 상처도 전날 폭행으로 생길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검찰의 가혹행위를 문제 삼으려면 증거로 진단서를 떼는 게 상식이지만 김씨는 진단서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호사에게 폭행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도 의문이다. 김씨의 변호사는 “그런 일이 있다면 누구나 변호사와 상의할 것”이라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 시장은 문건 내용을 부인했다. 그는 “검찰에서 나의 비리를 캐기 위해 김씨를 얼마나 강하게 추궁했으면 김씨가 그렇게 했겠나”라며 “나는 1원 한 푼 받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경산시의회 최상길 의장은 “철저한 조사를 거쳐 하루빨리 사건이 매듭지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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