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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건설로 보는 한 프리츠커상은 어림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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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10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의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류에 니시자와가 설계한 ‘롤렉스 교육센터’. 스위스 로잔 공대 캠퍼스에 있다. 우아한 곡선과 현대 첨단건축 기술이 결합된 이 건물은 두 사람이 프리츠커상을 받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Hisao Suzuki 촬영, ⓒHyatt Foundation]


세계에서 한국 건축의 자리는 어디쯤인가.

안도 다다오

 최근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Pritzker Prize) 수상자가 발표되면서 한국 건축의 현실을 되돌아보자는 목소리가 높다. 프리츠커상은 이미 33회에 걸쳐 수상자를 선정해왔지만 한국에서는 수상자가 한 명도 없다. 올해 수상자인 에두아르두 수토 드 모라를 포함해 포르투갈에서 이미 두 명이 상을 탔고, 일본에서도 안도 다다오·세지마 가즈요 등 네 명이 수상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7일자 중앙경제 14면>

 한국에서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한 꼼꼼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꼭 프리츠커상 때문이 아니라 한국 건축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서다. 건축이 거주·사무환경은 물론 도시환경 등 국민의 삶과 직결된 만큼 관련 환경 개선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많다.

 ◆지자체 호화청사의 그늘=국내 전문가들은 한국 건축의 잠재력을 인정한다. 성장과 활력의 경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건설을 넘어선, 건축이 꽃필 수 없는 우리만의 열악한 조건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건축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부족 때문에 ‘건축은 없고 건설만 있는’ 풍토가 조성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건축가 승효상(이로재 대표)씨는 “국민은 물론 정부도 아직 건축과 건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준비가 안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승씨는 “정부와 지자체가 건축이 문화라고 여겼다면 공공건축물을 ‘공장’ 찍어내듯이 턴키(설계부터 시공까지 일괄적으로 입찰에 붙여 발주하는 방식)계약으로 처리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성남시청·용인시청 등 최근 논란이 됐던 호화청사도 턴키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했다. 설계디자인을 시공사 일의 한 부분으로 치부한다는 점에서다.

 승씨는 “설계는 외관을 화려하게 디자인하는 작업이 아니다. 새 공간에 생겨날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려하는 게 기본이다. 에너지 효율과 공간활용 모두를 고려하는 총체적인 작업인데, 화려한 외관을 내세운 조감도를 선정하고 세금을 퍼붓는다”고 주장했다.

 건축가 황두진(48·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씨는 “잘못된 발주 시스템 때문에 한국의 많은 공공건축이 ‘작자 미상’으로 남아있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민들이 디자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임을 따지기 어렵게 만들어놓는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시청·구청 등 관공서는 물론 공립도서관·박물관·기차역 등을 지을 때 건축가 선정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건축가의 역할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다르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례로 2차대전의 상흔을 간직한 독일 베를린 노이에스 무제움의 건축가(데이비드 치퍼필드) 선정은 독일 국민의 뜨거운 관심사였다. 건축적 미학과 시민의 편의성을 고루 살린 미국 시애틀의 공립도서관의 경우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황두진씨는 “턴키제도는 건축가들에게 제대로 일할 기회를 빼앗는 것은 물론 시민들로부터 좋은 공간을 누릴 기회를 박탈하고, 좋은 건물을 후손에 물려줄 기회마저 없애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포르투갈 건축가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가 설계한 파울라 레고 미술관. 지역성과 세계 건축의 보편성을 함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Luis Ferreira Alves촬영, ⓒHyatt Foundation]



 ◆건축가는 하청업자일 뿐=현재 건립 중인 서울시청 신청사도 턴키방식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기본설계를 한 건축가 유걸(아이아크 공동대표·경일대 석좌교수)씨는 설계안을 만들었지만, 나머지 공사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새 청사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문화재 심의, 반대여론 등으로 디자인이 다섯 차례 변경된 후 유씨가 설계를 맡았다. 그러나 실시설계 등 나머지 과정은 턴키 계약에 의해 디자인을 수주한 삼우종합건축(대표 김창수)이 진행하고 있다. 유씨는 “건축가는 설계만 하면 끝이다. 이후 디자인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다”며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 자체는 건축을 단지 비즈니스로 보고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성토했다. 유씨는 “서울시와 시공사에 편지를 보내 설계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건축가가 ‘하청업자’ 수준에 머물 경우 ‘종합예술’로서의 건축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건축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정책도 없는 상황이다. 건축문화 개선을 목표로 2008년 12월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설립됐지만 건축가들은 “지난 2년 간 피부로 느낄만한 성과는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현재 1기 위원들은 임기가 종료됐고, 2기는 구성되지 않은 상태다. 유걸씨는 “ 건설교통부·국토해양부 등 건설에만 초점을 맞추고, 시민들은 건축을 부동산으로만 알고 있다. ‘생각(디자인)’의 가치를 평가하고 이해하는 문화가 실종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건축가들의 책임도 부정할 수 없다. 연세대 건축학과 윤승현 교수는 “건축가들이 자질 향상과 환경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도 “건축문화가 성숙되지 않은 것은 건축인들이 사회와 소통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그들이 적극 나서 건축이 일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국이 OECD선진국형 산업구조에 근접하려면 건설의 하드웨어에서 건축의 소프트웨어로 중심축을 이동해야 한다. 법령 개정을 포함해 구체적인 개선방안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은주 기자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al Prize)=해마다 인류와 환경에 중요한 공헌을 한 건축가에게 주는 상. 건축 분야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힌다. 하얏트호텔 체인을 소유한 하얏트재단 전 회장 제이 A 프리츠커(1922~99) 부부가 1979년 제정했다. 오스카 니마이어·루이스 바라간·프랭크 O 게리·알바로 시자·페터 줌토르·렘 쿨하스·자하 하디드 등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모두 받았다. 일본에서는 단게 겐조(1913~2005)를 비롯해 93년 마키 후미히코(83), 95년 안도 다다오(70) 등 모두 4회 수상했다.

전문가 의견 한국 건축을 업그레이드 하려면 …

김광현(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삶은 건축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사회는 이 사실을 너무 모른다. 건축은 건축가의 것도, 정부의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의 것이다. 그 동안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자기 일에만 만족해온 엘리트 건축가들은 반성해야 한다. 건축은 사회의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며 미래를 만드는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

김성홍(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지식서비스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는 2009년 산업발전법을 개정했는데 건축설계서비스업은 적시하지 않았다. 건축 설계를 지식서비스산업으로 진흥할 수 있는 근거법이 전무하다 .산업적 측면에서 어떤 법률에도 속해 있지 않는 건축설계를 문화산업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유걸(건축가·아이아크 대표)

“건축은 건축가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설계도 한 장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건립 과정 전체를 살펴야 한다. 건축가를 찾는 것도 그렇다. 스타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해당 건물의 용처를 꿰뚫는, 즉 가장 잘 지어줄 건축가를 찾아야 한다. 정부와 시민이 건축을 이해하고, 건축가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하는 이유다.”

이종호(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학과 교수)

“큰 공공건축의 경우 건축가는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 공사를 감리할 수 없게 돼 있다. 프로젝트에 애정이 없는 기능인들이 입찰로 선정돼 감리를 맡고, 설계자는 공사기간 중에 ‘잊혀진 타인’이 된다. 이 무슨 엉터리 제도인가.”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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