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가왕 조용필의 아름다운 약속 이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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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날 한센인들이 감동하고 위로받은 건 가수 조용필씨의 노래 때문만이 아니다. 자기 같은 사람들을 위해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조씨의 진실하고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 그렇게 더 웃고 울었는지 모른다. 15일 오후 전남 고흥군 소록도(小鹿島)에서 열린 한센인을 위한 조용필 콘서트는 ‘작은 사슴의 섬’이란 이름에 걸맞게 따뜻하고 선(善)한 마음들이 어우러진 감동의 자리였다. 그 순간만큼은 이방인의 땅으로 여겨졌던 흔적도, 소외된 사람들의 그늘진 아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센인들에게 ‘친구’의 진실한 마음을 전한 조씨의 이번 소록도 자선 공연은 지난해 이어 두 번째다. 첫 공연은 지난해 5월 어린이날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그때 자신의 노래 두 곡을 불렀다. 그러나 한센인들이 아쉬워하자 자신만의 제대로 된 공연으로 다시 위로드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다시 오겠다”고 했고, 끝내 그 약속을 저버리지 않은 것이다. “칠십 평생을 이 섬에 살면서 이런 감동은 처음”이라는 한 한센인의 눈물은 현장에 없었던 우리까지 가슴이 따뜻하게 만든다. 헛된 약속이 난무하는 세상을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간 연예인의 소록도 방문 공연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이날 공연은 조용필씨와 한센인들이 그야말로 하나가 된 모습을 보여줬다. 조씨는 노래를 부르며 객석으로 내려가 한센인의 손을 일일이 맞잡고 포옹했다. 한센인들은 명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함께 노래했고, 무대 위로 올라가 조씨와 어울려 어깨춤을 췄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꿈꾸는 듯한 감동이 거기에 있었다.

 약속을 지킨 조씨가 한센인만 감동시킨 게 아니다. 그는 생색내는 것처럼 비칠 것 같아 이번 공연 소식을 언론에도 알리지 말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그늘진 곳, 소외된 사람을 돌아보는 자세를 다시 가다듬게 한다. 한 시대의 가왕(歌王)이기 이전에 사람을 향해 따뜻한 마음을 베풀 줄 아는 조씨에게 경의를 표한다.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가슴으로 안아주는 그의 마음을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누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