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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현빈을 숨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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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군대의 무용(武勇)은 잘생긴 배우의 얼굴이 아니라 승전(勝戰)에서 온다. 한국전·베트남전, 그리고 아덴만 작전에서 오는 것이다. 해병대는 국군 중의 국군이다. 해병대의 무용은 더욱 더 감투(敢鬪)에서 와야 한다. 한국 해병은 이미 그런 군복을 입고 있다. 그래서 산이 있어 산에 오르듯 해병이 있어 해병으로 간다. 젊은 사슴들이 각축(角逐)을 벌이며 해병으로 간다. 한국 해병은 굳이 스타를 내세워 모병(募兵)할 필요가 없다. 현빈을 모병 홍보병으로 배치한 것은 해병답지 못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모병하는 나라들도 있다. 미국 해병대엔 대규모 모병 사령부가 있다. 하지만 미국은 그래야 되는 사정이 있다. 징병제가 아니라 지원제여서 나서서 모병하지 않으면 해병 17만여 명을 채울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은 다르다. 병역이 의무여서 기본적으로 병역자원이 있는 데다 해병은 선망의 대상이다. 천안함·연평도 사태에도 해병대 지원은 오히려 크게 늘었다. 얼룩말 냄새를 맡은 사자처럼 해병의 땀냄새에 젊은 사자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설사 홍보가 필요해도 방법은 해병다워야 한다. 경박과 위선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해병은 특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왠지 ‘빽’이 없을 것 같은 사회,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누는 공동체, 그래서 한번 몸담으면 오래 간다는 조직…그런 터프(tough)하고 묵직한 이미지가 해병에겐 있는 것이다. 그런 해병이면 홍보도 묵직해야 하지 않을까. 훈련소에 들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미소 짓는 현빈, 6주 훈련 후에 빨간 명찰을 달고 휴가를 나오는 현빈, 그러고는 일선 부대로 묵묵히 사라지는 해병 현빈… 그런 장면들이 더 해병다울 것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가 받는 훈련을 현빈이 받았다고 왜 요란하게 사진을 공개하나. 대학가를 돌면서 “나처럼 해병 되시오”라고 외치면 그게 배우지 해병인가. 해병이 있을 곳은 대학가가 아니라 일선 부대다.

 “왜 현빈을 일선 부대로 보내지 않느냐”는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해병대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해병대에는 공수, 유격, 그리고 기습·상륙이라는 세 가지 특성화 훈련이 있다. 가장 힘들다는 해병수색대도 3개 중 2개만 받는다. 보병 병과는 1개를 받고 비(非) 보병은 하나도 받지 않는다. 그런데 해병대는 현빈에겐 3개를 모두 시키겠다고 한다. 아니 현빈이 무슨 해군 UDT대원이라도 되나. 왜 현빈을 가만히 두질 않는가.

 현빈에 관한 한 해병대는 이상하게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 요란한 대응도 군에 영향을 준다. 국방위 소속 야당의원 2명은 해병대에 현빈의 훈련성적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게 ‘특등사수 현빈’ 스토리다. 현빈은 수십만 병사 중 한 명이다. 현빈보다 못 배우고, 덜 잘 생기고, 사회·가정 형편이 뒤처지는 수많은 젊은이가 총을 쏘고 포복을 하며 군 생활을 한다. 현빈을 그저 그런 동료 병사 속에 묻어 두어야 한다.

 홍보가 넘치면 진실이 줄어든다. 전통이 깊을수록 홍보는 뚝배기 같다. 영국 찰스 왕세자의 차남 해리 왕자는 위험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은 6개월 근무가 끝난 후 보도하기로 합의했다. 왕자의 안전 때문이기도 하지만 ‘절제된 홍보’를 아는 것이다. 3개월 후 인터넷 언론이 약속을 깨고 나서야 국민은 왕자의 참전을 알게 됐다.

 팻 틸먼은 유명한 미국 프로미식축구(NFL) 선수였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그는 360만 달러(당시 42억원) 연봉을 포기하고 육군 특수부대에 자원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는데 그가 죽고 나서야 미국인은 그런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군이 그를 홍보병으로 활용했다는 얘기는 없다. 해병대는 현빈이 안 보이도록 해야 한다. 아덴만 작전 이후 UDT대원들이 떠들썩한 인터뷰에 나섰다면 작전의 의미는 퇴색됐을 것이다. 안 보여도 국민은 안다. UDT를, 해병을 기억한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