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아 아프지마’] 마음 털어놓을 사람 몇이나 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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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신경정신과 교수

“동일본 대지진 생각만 하면 눈물이 그치지 않아요. 슬프고 딱한 일인 건 맞지만 왜 이렇게까지 슬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여성심리 클리닉에 찾아온 50대 중반 주부의 말이다. 이성적으로 느끼는 슬픔의 정도보다 감정 반응이 너무 크다는 뜻이다. 그래서 물었다. “평소 남편·자녀나 주변 사람에게 섭섭한 감정이 생기면 표현을 잘 하는 편인가요?” “아니요, 잘 못해요. 꾹 참고 살았죠.” 그러더니 한숨을 푹 쉰다. ‘울화병’이 있는 것이다. 평소 가까운 사람들에게 서운했던 감정을 무의식 어딘가에 눌러놨는데, 나와는 관계가 적은 일본인이 겪는 아픔을 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인류애적 사랑’으로 합리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말했다. “거짓말을 너무 하고 사신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당장 발끈한다. “저희 집 가훈이 ‘거짓말하지 말자’예요.”

 내가 말하는 거짓말은 ‘새빨간’ 거짓말이 아닌 ‘하얀’ 거짓말이다. 남자들은 본인이 거짓말에 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반면 여자들은 스스로가 거짓말을 하는 줄도 모르고 거짓말을 하곤 한다. 모성애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아내·엄마의 역할에만 충실하다는 얘기다. 이러면 울화병이 생길 수 있다. 모성애가 인류 행복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여성 개인의 행복은 망치는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 차근차근 설명했더니 이 환자, 눈물을 흘린다. 2주 뒤 다시 외래를 찾아온 그분의 말씀. “가족 모임을 했어요. 가훈 바꾸기로 했어요.”

 우리의 감성 시스템은 보다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방어적으로 거짓말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조물주는 ‘진실’의 가치를 거짓말의 상위 개념으로 만들어놨다. 거짓말의 정도가 일정 수위를 넘어가면 역으로 울화병 같은 감정적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뜻이다.

 거짓말의 사전적 정의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말을 함’이다. 거짓말의 목적은 ‘비밀’을 지키기 위한 경우가 많다. 누군가 자신의 비밀을 캐내려고 하면 이를 지키기 위해 더 강하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자신의 비밀이 백일하에 드러났을 때 마음이 편한 사람이 누가 있겠나.

 하지만 타인의 비밀이나 거짓말은 눈뜨고 못 본다. ‘네티즌 수사대’는 불과 몇 분 만에 연예인·유명인의 거짓말을 잡아내 비밀을 폭로한다. 관련 기사는 인기 검색어 상위를 점령한다. 때론 뭇사람의 관심을 받기 위해 자신의 비밀을 전투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드러냄 속에 또 다른 비밀의 방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마르셀 고셰는 이런 투명성에 대한 집착을 ‘세상에 대한 환멸’로 설명했다. 환멸이라…. 현실이 괴로워지니 ‘전체주의적 유토피아’로 도망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뜻은 아닐는지. 이런 전체주의는 강렬한 하나됨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이런 하나됨을 깨뜨리는 ‘비밀’이란 녀석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해 편집증적 집착을 보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이쯤 되면 원래의 순수한 ‘하나됨’은 사라지고, 시스템을 지키는 비밀경찰만 남는다.

 사람의 행복에 필요한 것은 유토피아적인 환상을 유지하기 위한 비밀경찰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다. 최근 통계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는 행복과학은 인간 행복의 제1요소로 ‘내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를 꼽는다. 영국의 미술평론가이자 사상가인 존 러스킨은 “인간이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관심 어린 관찰”이라고 했다. 그가 사진기 대신 연필을 들고 아름다운 대상을 그려보라고 추천했던 이유다. ‘위로’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관찰이라고 할 수 있다. 모이기만 하면 서로를 ‘디카’로 찍어대고, 문자메시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각자의 근황을 알리는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관찰하고 있는 걸까.

 한국은 34분에 한 명씩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나라다. 하지만 누군가 자살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등의 말을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작은 슬픔을 가진 자는 이를 이야기하지만, 큰 슬픔에 빠진 자는 아무 말도 없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다른 사람의 비밀에 집착하는 것보다, 속사포처럼 서로의 근황을 전송하는 것보다, 지루할 만큼 느린 관찰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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