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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하려 일어선 홍정욱 … 여 “찬성한 것” 야 “기권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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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유럽연합(EU) FTA 비준동의안이 1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부결됐다. 한나라당 유기준 소위 위원장(오른쪽)과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다투는 동안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왼쪽)이 기권을 선언하고 퇴장하고 있다. 강 의원은 국토해양위 소속이지만 FTA 비준안 처리를 막기 위해 외통위로 건너와 몸싸움까지 벌였다. [김형수 기자]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1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부결됐다. 법안소위원은 여당 의원 4명과 야당 의원 2명이다. 한나라당은 수적 우위만을 믿고 비준안 의결을 시도했지만 암초에 걸렸다. 같은 당 홍정욱 의원이 기권을 해 처리하지 못한 것이다.

 홍 의원이 기권을 한 것은 지난해 말 여당의 예산안 강행처리 후 “여야가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강행처리에 다시 동참하면 19대 총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선언을 그가 주도한 데 따른 것이다. 이 선언엔 여당 의원 22명이 참여했다.

 또 홍 의원은 올해 초 ‘직권상정 제한 법안’도 대표 발의했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법안에 대해선 의결 요건을 ‘재적의원 5분의3(180명) 이상 출석과 그 과반의 동의’로 강화하는 법안이다. 그는 거부권을 행사한 뒤 기자회견에서 “한·EU FTA엔 찬성하지만, 야당과 협의 없이 의결해선 안 된다. 빠르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준안이 소위에서 부결된 직후 한나라당 외통위원들은 대책회의를 열고 같은 당 남경필 외통위원장에게 전체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비준안 의결을 재시도한 것이지만 남 위원장은 회의만 열었을 뿐 비준안을 표결에 부치지 않았다. 그도 ‘22인 선언’에 서명했고 직권상정 제한 법안 발의자로 이름을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회의는 소위 부결 상황을 놓고 논쟁만 벌이다 끝났다. 소위에서 기립 방식으로 표결하던 순간 홍 의원이 퇴장하기 위해 일어선 걸 두고 여당 측은 “찬성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야당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논란이 일자 홍 의원은 "기권하기 위해 일어났던 것”이라고 밝혔다.

 회의를 마친 뒤 여야 간사는 19일 한·EU FTA 비준안에 대해 다시 논의하고 처리는 4·27 재·보궐 선거 이후에 하는 쪽으로 의견을 좁혔다. 하지만 남 위원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 여야 합의가 이뤄지기 전에 강행처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합의가 안 되면 재·보선 뒤라도 비준안 처리가 불가능하단 뜻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 외통위에서 비준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웠었다. 이에 따라 외통위 법안소위원장인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은 홍정욱 의원에게 사보임(위원 사퇴 후 교체)을 요청했다. 홍 의원이 비준안 처리에 소극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의원으로 바꾸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홍 의원이 사보임을 거부하고, 표결에서 기권을 행사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22인 선언’을 한 여당 의원들이 실제로 여당 지도부의 방침을 무산시킨 건 처음이다.

 앞서 법안소위 표결 과정에선 국토해양위원인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회의장에 들어가 큰 목소리로 비준을 반대한다고 외쳤다. 이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공부 좀 하십시오”라고 면박을 줬고, 강 의원은 “어디다 대고 감히 그런 말을 하느냐”고 소리쳤다. 김 본부장도 “말씀 조심하십시다”라며 맞대응해 회의장은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글=남궁욱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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