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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년, 한국 외교 리더십이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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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마이클 그린
미국 CSIS 고문

몇 년 전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한국이 개방적이고 포괄적인 동아시아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점을 가졌다고 썼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한반도 문제에만 매달리지 말고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했다. 내 주장의 논지는 명확하다. 한국은 모든 주요 지역 이슈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중국 대륙과 해양국가인 일본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점을 외교적으로 잘 활용하면 역사적으로 오랜 경쟁관계인 두 나라가 상호 신뢰와 협력을 증진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아시아 지역에서 민주주의 국가들과 권위주의 국가들 사이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은 아시아적 전통을 지키면서도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달성한 나라의 전범(典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지구적 차원의 핵확산 방지 노력의 첨단에 서 있다. 북한의 위험한 핵무기 개발과 대조되는, 신뢰할 수 있는 평화적 핵 이용 국가라는 전략적 입지를 잘 과시함으로써 영향력 확대를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 정부가 2012년 핵정상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도록 유도한 것도 한국의 이 같은 위상을 감안한 것이다.

 앞으로 1년 동안 아시아에서는 활발한 다자외교가 펼쳐지게 된다. 이는 한국이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다. 우선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제안하는 ‘3단계 방식’은 당초 북·미 양자대화와 6자 수석대표회담에 이어 6자 본회담을 개최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이후 한·미·일은 중국이 그 같은 방식을 포기하도록 설득한 듯하다. ‘3단계 방식’은 최근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에 이어 6자회담을 개최한다는 내용으로 변했다. 북한이 이 같은 회담 진전에 필수적인 남북간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어렵지만 배제할 순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6자회담이 열린다고 해도 북한이 돌이킬 수 없고 검증이 가능한 비핵화에 나설 것 같진 않다. 따라서 미국과 여타 국가들은 북한에 어떤 양보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결국 6자회담이 열리든 열리지 않든 북한의 도발적 핵 야욕(野慾)을 억제하는 방안으로 논의의 초점을 옮기는 것이 옳다. 한·미·일의 강력한 공조체제는 그 같은 논의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3국은 북한을 제외한 한·미·일·중·러가 참여하는 5자회담 개최에 중국이 동의하도록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여타의 다자외교 기회도 많다. 오는 6월 싱가포르에선 연례 국방장관 회담이 열린다. 국제전략연구소(IISS)가 주최하는 일명 샹그릴라 회담이다. 이때 북핵문제를 집중 거론해 대북압박의 중요성을 중국 인민해방군 대표에게 납득시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어 7월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개최된다. 북한도 이 회담에 참석하므로 북핵문제를 공동성명에 포함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공동성명에 북핵문제를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전개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 대립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행동을 변명해야만 하도록 만들 수 있다. 또 5자회담 개최 노력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를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11월에는 하와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발리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열린다. 발리회의에는 오바마 미 대통령이 처음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중국은 대만도 참가하는 APEC에서 안보문제를 논의하길 거부해왔다. 그러나 APEC 외무장관 공동성명에는 2002년을 비롯해 여러 차례 북핵문제에 대한 강력한 반대 입장이 포함된 바 있다. 미국이 주최국인 올해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EAS에는 미국이 처음 참가하기 때문에 한국의 주도적 노력이 중요하다. 이런 노력은 모두 북한에 대한 지역적·국제적 압박을 점증시켜 내년에 한국에서 열리는 핵정상회의에서 결실을 거두기 위한 것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한국·인도네시아·호주(KIA) 회의 개최와 아세안+3(한·중·일 3국) 사무국을 송도에 유치하는 일 등을 통해 역동적인 ‘중간 국가(middle power)’로서 지역구도 형성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런 노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EAS나 APEC정상회의, 핵정상회의와 G20과 같은 보다 광범위한 다자회담의 무대에서 한국은 외교적 역할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동시에 6자회담이 교착된 상황에서 새로운 핵외교를 전개할 기회도 된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