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 도시는 싫어, 뉴욕은 좋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난 도시가 싫어 (I don’t like cities)
하지만 뉴욕은 좋아 (But I like New York) ……
다른 도시들은 언제나 날 화나게 해 (Other cities always make me mad)
다른 곳들은 날 슬프게 하지 (Other places always make me sad)
날 기쁘게 하는 도시는 없어 (No other city ever made me glad)
뉴욕 이외엔 (Except New York)
사랑해 뉴욕, 사랑해 사랑해 (I love New York, I love New York, I love New York)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브로드웨이 타임스스퀘어에 나갔다. 현란한 뮤지컬 광고판과 뉴욕의 상징 ‘옐로 캡’을 보는 순간 장거리 비행의 피곤함은 어느새 싹 사라져 있었다. [프리랜서 고윤지]

지난달 24일 뉴욕행 비행기 안. 기내 음악서비스에서 마돈나의 ‘I Love New York’이 흘러나왔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고개까지 흔들며 따라 불렀다. 가사 한 줄 한 줄이 어쩜 이리도 내 마음과 같은지.

 여자라면 누구나 뉴욕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지 않을까. 뉴욕에서라면 어느 화려한 숍에서 마지막 남은 장갑을 나와 동시에 잡는 운명의 남자를 만날 거 같고(영화 ‘세렌디피티’), 매그놀리아 컵케이크를 들고 거리를 거닐기만 해도 행복할 거 같으니 말이다(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본격적으로 ‘뉴욕 앓이’에 불을 지핀 건, 뭐니 해도 ‘섹스 앤 더 시티’다. 뉴요커 캐리와 세 친구의 스타일리시하고 트렌디한 일상을 보며 우리 여자들은 얼마나 뉴욕 판타지를 키워왔던가! 캐리 역의 세라 제시카 파커가 인터뷰에서 말했던 대로 “뉴욕은 이 드라마의 다섯 번째 주인공”이다.

 스물여덟 번째의 봄, 홀로 뉴욕으로 떠났다. 두 번째 뉴욕이다. 6년 전 여행이 가족과의 패키지였다면 이번엔 캐리가 돼 뉴욕을 즐겨 보고 싶었다. 한숨만 느는 20대 후반, 꿈만 꾸던 로망을 직접 느끼며 삶의 활력을 얻고 싶었다. 꿈이 현실이 되는 곳이 바로 뉴욕이니까.

 마돈나의 노래가 애국가만큼이나 익숙해질 때쯤, 비행기가 JFK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얼른 창밖을 내다봤다. 저 멀리 뉴욕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14시간 비행의 피곤함은 온데간데없이 기대와 흥분이 마음을 흔들었다. 미국의 재즈가수 노라 존스가 ‘New York City’에서 노래했듯이 뉴욕은 ‘너무나 아름다운 전염병(such a beautiful disease)’임에 틀림없나 보다.

글=윤서현 기자
사진=프리랜서 고윤지

온종일 걸어도 신나는 건 왜지?

페리 타고 자유의 여신상 보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 올라가기, 그라운드 제로 방문하기…. 물론 뉴욕의 필수 관광코스다. 하지만 2030여성이 원하는 건 좀 더 핫하고 스타일리시한 뉴욕의 모습이다. 이번 뉴욕 여행의 메인 테마를 아트·트렌드·컬처로 잡은 이유다. 여자 혼자서도 외롭지 않았던, 오히려 더 자유로이 뉴욕을 느낄 수 있어 즐거웠던 4일간의 뉴욕 감성충전 여행기를 소개한다.

글·사진=윤서현 기자

# 밤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고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1. 뉴욕에 가면 꼭 사게 되는 ‘I ♥ NY’ 기념품들. 2 노리타의 ‘에일린스 스페셜 치즈케이크’. 3 소호보다 조금 한적한 노호에선 빈티지 쇼핑을 하기에 좋다. 4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공연 중인 ‘임페리얼 극장’ 앞. 때마침 ‘빌리 엘리어트’ 광고판을 얹은 택시가 지나갔다. 5 첼시의 한 갤러리. 6 아치형 벽돌 벽과 원형 시계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첼시 마켓. 7 과거 도축·정육 지구였던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엔 지금도 맛있는 스테이크 집이 많다. 8 한 번 들어가면 두 시간 쇼핑은 기본인 소호의 ‘앤스로폴로지’. 9 칵테일 한 잔 마시며 뮤지컬을 보는 게 요즘 브로드웨이의 최신 트렌드다. ‘위키드 스페셜 칵테일’ 15달러.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금요일 저녁. 그러나 브로드웨이 ‘임페리얼 극장(Imperial Theater)’ 앞에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보러온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젊은 연인, 노부부, 학생 단체관람객 모두 하나같이 기대에 찬 얼굴들이었다. 원작인 동명의 영화를 다섯 번이나 봤던 나도 공연장 입구에서부터 흥분된 상태였다. 그리고 기대는 무너지지 않았다. 엘턴 존의 음악에 유머와 휴머니즘, 14세 소년의 황홀한 몸짓이 어우러진 공연은 원작 이상의 감동이었다. 빌리가 친구 마이클과 ‘Expressing Yourself’에 맞춰 탭댄스를 추는 장면에서는 모든 관객이 발을 구르며 환호했다.

 모두가 숨죽이고 지켜봤던 하이라이트는 ‘Electricity’. 왕립발레학교 오디션에서 한 심사위원이 “춤을 출 때 어떤 느낌이지?”라고 묻자 빌리는 “전 갑자기 하늘을 날기 시작해요, 새처럼. 그 짜릿한 전율, 전율(And suddenly I’m flying, flying like a bird. Like electricity, electricity)”이라고 노래하며 발레·아크로바틱·스트리트댄스를 연이어 춘다.

 공연이 끝나는 순간, 2시간50분 동안이나 환상적인 노래와 연기를 보여준, 그리고 잊고 있던 꿈을 일깨워준 빌리에게 진심을 담아 기립박수를 보냈다.

 다음날 밤에도 나는 브로드웨이에 있었다. 이번엔 뮤지컬 ‘위키드’를 보러 ‘조지 거슈윈 극장(George Gershwin Theater)’에 갔다. ‘빌리 엘리어트’와 달리 ‘위키드’는 간략한 줄거리만 알아서인지 조금 걱정이 됐다. 하지만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거대한 스케일의 무대와 화려한 의상, 흡인력 강한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작품이었다.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 이전 이야기다.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오즈의 세계에 오기 전, 그곳에 살던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과 엇갈린 삶이 주내용이었다. 양철 나무꾼과 허수아비의 탄생 비화가 특히 흥미로웠다. 제작비만 1400만 달러가 든 대작답게 엘파바가 빗자루를 쥔 채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면, 글린다가 원형 설치물을 타고 공중에 떠 있는 장면 등은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장쾌했다. 마치 꿈을 꾼 듯이 커튼 콜이 끝나고도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옆자리 백인 할머니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Wow, awesome…isn’t it?(와, 정말 멋지지 않니?)”

# 첼시 마켓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고

뉴욕은 어디를 가도 갤러리가 많다. 그러나 젊은 작가의 재기 발랄함을 엿보고 싶다면 첼시가 제격이다. 하이라인 파크 주변, 23번 스트리트부터 27번 스트리트까지 소규모 갤러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대부분 무료입장이며 자유롭게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젊은 작가의 개성 넘치는 작품이 널려 있었다.

 이번엔 배를 채울 차례였다. 마크 트웨인, 앤디 워홀, 오 헨리 등이 자주 묵었다는 첼시 호텔을 지나 첼시 마켓에 도착했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황갈색 벽돌 벽과 배관, 철골이 그대로 드러나는 천장이 눈에 띄었다. 본래 이곳은 오레오쿠키로 유명한 나비스코사의 공장이었다고 한다. 1959년 과자 공장이 문을 닫자 기존 외벽과 일부 시설을 그대로 둔 채 활기차고 정감 넘치는 첼시 마켓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더 이상 오레오쿠키는 구워지지 않지만 여전히 이곳엔 달콤한 냄새로 가득하다.

 브라우니로 유명한 ‘팻 위치 베이커리(Fat Witch Bakery)’, 뉴욕 대표 빵집 ‘에이미 브레드(Amy’s Bread)’, 깔끔한 커피 맛을 자랑하는 ‘나인 스트리트 에스프레소(9th St. Espresso)’, 인기 브런치 숍 ‘사라베스 베이커리(Sarabeth’s Bakery)’ 등이 첼시 마켓 안에 자리하고 있다. ‘에이미 브레드’의 쿠반 샌드위치(5.50달러)와 ‘나인 스트리트 에스프레소’의 아이스커피(2.50달러)를 먹고도, 쫀득쫀득하면서도 진한 맛에 반해 ‘팻 위치 베이커리’의 브라우니(2.50달러)를 두 개나 샀다.

 첼시 마켓 바로 옆에 있는 미트패킹 디스트릭트도 ‘남다른 과거’를 갖고 있다. 미트패킹(Meatpacking)이란 이름처럼 도축가공업체가 모여 있던 이곳은 후미지고 음침한 동네였다고 한다. 1980년대 들어 도축가공업자들이 철수하고, 텅 빈 창고에 디자이너 숍·카페·레스토랑·클럽 등이 들어서면서 최근 가장 ‘힙’한 동네가 됐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가 문란한 사생활로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 쫓겨난 뒤 이사를 오는 곳이 바로 여기 미트패킹 디스트릭트다. 사만다와 그녀의 친구들이 브런치를 즐기던 ‘패스티스(Pastis)’도 이 동네에 있다.

# 소호에서는 알뜰 쇼핑

호텔을 나서며 가장 편한 운동화를 챙겨 신었다. 하루 종일 소호에서 ‘뚜벅이 쇼핑’을 할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소호에 도착하니 일요일 오전 10시30분. 숍이 하나 둘 문을 열고 있었다. 소호에선 명품 쇼핑과 빈티지 쇼핑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프린스 스트리트와 스프링 스트리트엔 화려한 명품 숍과 편집 매장이 줄지어 있다. 이 두 메인 스트리트를 벗어나 작은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빈티지 숍과 카페가 반갑게 맞는다.

 린지 로한과 패리스 힐턴이 단골이라는 ‘인터믹스(Intermix)’와 패션 리더 뉴요커 사이에서 뜨고 있다는 ‘스쿠프(Scoop)’는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했지만, 가격 압박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아이템 대부분을 도로 내려놓아야 했다. 대신 ‘앤스로폴로지(Anthropology)’에선 실속 쇼핑을 즐길 수 있었다. 빈티지 스타일의 옷과 액세서리·인테리어 소품·주방용품·화장품 등을 파는 라이프스타일 숍으로, 널찍한 매장에 감각적인 디스플레이가 쇼핑 욕구를 마구 부추겼다. 세일 코너에서 158달러짜리 도트 프린트 원피스를 79달러에 ‘득템’하고, 친구들에게 줄 선물까지 사서 숍을 나오니 어느덧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잠시 다리도 쉴 겸, 소호 옆 동네 노리타에 있는 ‘에일린스 스페셜 치즈케이크(Eileen’s Special Cheesecake)’를 찾았다. 비틀스부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까지 다녀갔다는 얘기를 듣고서, 꼭 그 맛을 보고 말겠다고 벼르고 있던 곳이다. 블루베리 치즈케이크(3.50달러)를 주문해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입안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는 치즈케이크와 통유리로 눈부시게 부서져 들어오는 햇살. 한없이 포근하고 달콤한 일요일 오후였다.

뉴욕 감성여행을 위한 알뜰 팁 두 가지

● 하나 신용카드 이벤트 활용하기

삼성카드(www.samsungcard.com)가 다음달 31일까지 ‘Global SELECT2-Musical&Opera’라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인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위키드’ ‘라이언 킹’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를 삼성카드로 예약하면 동반 1인이 공짜로 입장할 수 있다. 또 57번 스트리트에 있는 ‘르 파커 메르디앙 호텔(Le Parker Meridien Hotel)’에서 삼성카드로 결제하면 최대 20%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1688-8200.

● 둘 뉴욕 지하철 이용하기

1회 탑승권(Single Ride)은 2.50달러, 위클리 패스(7-day Unlimited Pass)는 29달러다. 보통 뉴욕 여행이라면 1주일 여정이 대부분이니 위클리 패스를 끊는 게 훨씬 이득이다. 뉴욕 지하철 노선은 복잡하기로 악명이 높다. 역무원에게 무료 지하철 노선도를 얻거나 호텔 로비 등에서 챙겨 나와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