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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방위사업 감사의 양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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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편호범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회장
전 감사원 감사위원

양건 감사원장이 취임 후 첫 실·국장회의에서 방위사업 비리 척결을 위한 감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과거에도 감사원의 방위사업 감사는 수시로 있었다. 문민정부 시절 이회창 감사원장이 취임한 후 소위 율곡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가 실시되었고, 참여정부에서도 방위사업 비리에 초점을 맞추고 강도 높은 감사가 진행되었다. 그럴 때마다 감사원은 관련 당사자들에게 엄한 책임을 물었으나 아직도 이 분야는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돼 오고 있다.

 올해 국방예산의 30%에 이르는 9조6000억원의 방위사업 예산에 한 점 비리도 없이 취약한 국토방위에 쓰여야 함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정부로서는 한정된 예산 아래에서 무기 하나라도 더 개발하려다 보니 예산 쥐어짜기에 급급하고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가 다반사다. 그러나 방위산업의 핵심인 첨단무기 개발은 그 성격상 장기간에 걸쳐 많은 연구개발비와 예산이 소요될 뿐 아니라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외국의 경우 방산물자 수출 촉진을 위해 대통령과 관련 공무원이 나서서 적극 지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방산업체를 죄인 취급만 한다면 선(先)투자를 많이 한 방산업체로서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과거의 감사를 들여다보면 사업비 과다 지급 등 비리 척결에 중점을 두다 보니 우리 실정에 맞는 중·장기 무기체계 구성의 적정 여부나 우리 기술로 개발해야겠다는 무기들에 대해 타당성이나 성능 검토가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꼭 필요한 연구개발비 등을 낭비성 경비로 보아 이를 깎게 하고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감사를 진행하다 보면 업체로서는 어떻게 하든 손실을 만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충분한 보상이 뒤따라야만 경쟁력 있는 제품이 개발되는데 애매한 지출 항목은 인정해 주지 않고, 그러다 보니 방위사업체로서는 기술개발은 요원하고 오히려 불량품만 양산하게 된다.

 이번 감사에는 방위산업물자 원가계산 규정을 면밀히 검토해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은 개정할 필요가 있다. 방위사업과 일반사업의 비용 배분 기준을 좀 더 객관화하고 실질적인 연구개발이 이뤄지도록 적정 상한선 범위 내에서 연구개발비를 융통성 있게 집행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방산업체들이 가장 애로를 느끼고 있는 지체상금의 부과 규정도 현실화해야 한다. 시행착오가 많은 국산화 개발사업임에도 지체상금 부과 규정은 일반물품 구매 규정과 똑같이 납기 지연일수를 계산해 예외 없이 징수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담당 공무원이 당시의 정상을 참작해 지체상금 부과를 완화하려고 해도 책임이 무서워 꺼리게 된다. 정부가 일부 부품을 대주어 추진하는 개발사업의 경우에도 납기 지연 책임을 업체에 모두 떠넘기는 경우도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전체 개발비용의 40%를 지체상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감사는 공명정대를 잣대로 비리는 단호하게 응징하되 유망 우수기업이 보호받고, 경쟁력 있는 방위산업으로 발전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돼야 한다.

편호범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회장 전 감사원 감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