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휴가 다 쓰면 간 큰 직원” 직장인 82%가 다 못 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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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연차휴가 쓰려면 아예 자리 빼고 가라.”

 기아자동차 사원 이모(28)씨가 지난해 말 하루 동안 연차휴가를 내려고 팀장에게 보고했다가 들은 얘기다. 이씨가 속한 팀은 쉽게 연차휴가를 쓰기 어려운 분위기다. 팀장부터 바로 윗 선배까지 줄줄이 눈치를 주기 때문. 특히 팀장은 “(부하 직원을 휴가 보내지 않아) 내가 인사고과에서 안 좋은 평가를 받아도 상관없다. 차라리 팀원들이 출근해 팀 실적을 올리는 게 더 낫다”며 다그치곤 한다. 이씨는 "지난해 연차휴가 11일 중 하루밖에 쓰지 못했다. 입사 동기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며 “정기휴가와 달리 연차휴가는 ‘덤’이란 분위기가 있어 사원이 휴가를 간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연차휴가를 100% 활용하지 못하는 직장인이 많다. SK텔레콤 입사 3년차 김모(28)씨는 “윗사람들이 연차휴가를 잘 안 쓰기 때문에 부하 직원들이 휴가를 내기 어렵다”며 “연차휴가를 다 쓰면 ‘간 큰 직원’ 소리 듣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취업포털 커리어(www.career.co.kr)가 최근 직장인 65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82%(538명)가 ‘2010년 연차휴가를 다 못 썼다’고 답했다.

 인사담당자들은 연차휴가 제도 운용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현대차 인사담당자는 “직무마다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연차휴가를 강제할 수는 없다”며 “팀장들에게 팀원의 휴가 사용을 장려해 달라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금재호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율적으로 연차휴가 문화를 정착시키기는 어렵다”며 “정부에서 직원들의 휴가 사용 실적에 따라 회사의 고용보험료를 조정하는 등 다소 강제적인 방식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직원들이 휴가를 제대로 쓰는 회사들도 있다. 포스코 임직원은 지난해 주어진 휴가 일수의 95%를 쓴 것으로 조사됐다. 2007년부터 시행한 ‘VP(Visual Planning)’ 제도 덕이다. 직원이 매일, 혹은 매주 스케줄 활용 계획을 정리해 부서원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업무 외에 휴가계획까지 적어야 한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연차휴가에 더해 ‘대체휴가’ 제도까지 운용한다. 공휴일이 주말과 겹칠 경우 하루를 더 쉬게 해주는 것이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지난해 연말 최장 9일에 달하는 연말휴가를 받아 화제가 됐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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