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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재·보선 격전지 성남 분당을 가다 ① 한나라 강재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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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된 강재섭 전 대표가 4일 밤 분당구 정자역에서 시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한나라당 강재섭 전 대표는 4일 오전 7시쯤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집을 나섰다. 미금역에서 명함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이 시각엔 전날 여론조사로 실시한 당 후보 경선 결과는 발표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공천을 자신한 그는 서둘러 거리로 나섰다. 한나라당 색깔인 파란색 점퍼를 입고서였다.

여론조사 경선에서 그의 지지율 71.2%가 나왔다. 오전 9시가 지난 시점에서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강 전 대표가 한마디 했다. “이제야 서로 먼저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전화를 해댄다. 후보 다~ 되고 나니까….” 자신이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공천 경쟁을 했을 때 수수방관했던 일부 당직자·의원 등을 겨냥한 말투다. 그런 그에게 심경을 물었다.

-공천잡음이 심했는데.

 “그 문제는 이제 잊으려 한다. 다만 이렇게 좁은 지역의 민심도 파악하지 못하고 지도부가 (내가) 맘에 안 든다고 수(手)나 쓰고 있었으니…. 나는 열심히 해서 꼭 이길 거다. 하지만 이겨도 당이 이겼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다. 그간 (당은) 다리만 걸지 않았나.”

 -이재오 특임장관과도 각을 세웠는데.

 “그 문제는 그쯤 하자.”

 출근 인파가 잦아들자 강 전 대표는 오전 9시30분 분당구청으로 향했다. ‘대한미용사회 분당지부 정기총회’에 ‘얼굴도장’을 찍기 위해서였다. 미금역 앞에서 50m 거리를 두고 인사를 하던 경쟁자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당 회의를 주재하러 서울 여의도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에 비하면 ‘지역밀착형 행보’다. 이게 당직자가 아닌 강 전 대표의 강점이다.

 -손 대표는 ‘분당을은 그냥 지역구 의원 뽑는 선거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럼 전국구 의원 뽑는 선거냐? 아니면 대통령 뽑는 선거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러면 안 된다.”

 -손 대표를 어떻게 생각하나.

 “후보 평가는 주민이 하는 거다.”

 미용사협회 행사장에 도착한 강 전 대표는 한참을 입구 앞에서 머물렀다. 그러면서 속속 입장하는 미용사들, 그중에서도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지나가는 20~30대를 끝까지 따라가 “에이~악수 좀 하고 갑시다” “저 강재섭인데 아시죠”라고 말을 걸었다. 젊은 층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여론조사 결과(본지 4월 4일자 1, 6면)를 의식한 듯했다.

 -20~30대 지지율에선 밀리는 걸로 나오는데.

 “3년 동안 내가 놀았기 때문에 인지도가 떨어진 탓일 거다. 거기(손 대표)는 아무래도 현직(당직자) 아니냐. 근데 나이로 치면 내가 더 젊다.”

 행사장에서는 민주당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과도 마주쳤다. 강 전 대표는 이 시장과 악수를 하며 “그쪽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온다고, 너무 세게 (엄호)해 주시면 안 됩니다”라고 ‘뼈 있는 인사’를 했다. 이에 이 시장은 “그야 약속드리죠”라고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선거전은 갈수록 달궈지고 있지만 지역 주민들은 그걸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강 전 대표가 입구에서 나눠준 명함 몇 장은 어느새 행사장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슬그머니 명함을 내려놓는 참석자에게 “강 전 대표를 싫어하느냐”고 물었더니 “아직은 별 관심이 없다. 여기 사람들 대부분 그럴 것”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오후 1시50분 정자역 옆 선거 사무소에서 강 전 대표를 다시 만났다. 그는 “지역 유력 인사들을 만나 지지를 당부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누구를 만났는지에 대해선 ‘영업기밀’이라고 캠프 참모들이 말했다.

 강 전 대표의 선거 사무소 외벽에는 ‘15년 분당 사람’이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1996년부터 분당에서 살고 있는 ‘이력’을 내세우는 건 이제 막 분당으로 주소를 옮긴 손 대표와 차별하기 위한 전략이다.

 사무소 현관에는 오전에 도착한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의 경선 승리 축하 화분이 놓여 있었다. 홍 최고위원은 당 지도부 일원 중 강 전 대표의 공천을 앞장서서 반대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그가 보낸 화분은 달라진 당내 분위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무소에서 만난 강 전 대표는 당 지도부를 향해 서슴지 않고 쓴소리를 퍼부었다.

 -당선되면 당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현재의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 때의 천막정신이나, 내가 대표하던 시절 정권교체를 위해 몸부림치던 때의 ‘헝그리 정신’을 잊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 배 드러내고 누운 동물 같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도 모르고 기득권이나 유지하고자 한다. 이런 당에 맑은 정신을 불어넣어야 한다. 내가 분당을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건 아주 당연한 거고, 그것 외에 한나라당에 새 정신을 불어넣은 역할을 할 거다.”

 -당직을 맡겠단 얘긴가.

 “난 이미 대표를 했다. 이젠 추대해 준다고 해도 싫다.”

 -현 지도부가 잘못했다고 보는 이유는.

 “전·월세 대란이 닥치고, 유가가 폭등하고 이러면 당이 주도적으로 정부 부처를 불러 혼도 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지도부는 가만히 있다가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 푸념만 한다. 이런 당으론 안 된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 쓸데없는 개헌 얘기나 하고…. 이러니 ‘경제대통령을 뽑았다는 게 피부로 안 느껴진다’는 국민이 많은 것 아니냐. 민심이 바다라면, 현재 한나라당은 그 위에 떠있는 한 줌 기름이다.”

 -당선되면 당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자신하나.

 “지난 3년간 ‘실업자 생활’을 했다. 그동안 민심의 바다에 빠져 지내봤다. 당선되면 그 경험을 전하겠다.”

 -홍 최고위원은 축하 화분도 보냈더라.

 “열심히 돕겠다고 하더라. 그러나 나는 당 차원의 공식적 지원, 이런 거는 거부할 거다. 대표 등이 우~ 몰려와서 유세하고 이런 건 안 받을 거다.”

 강 전 대표에게 “손 대표에 대해 평가해 달라”고 다시 한번 요청했지만 그는 “남의 당 후보에 대해 내가 뭘…”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두 사람은 서울대 선후배 사이다. 손 대표가 정치학과 65학번(65년 입학), 강 전 대표는 법대 67학번이다. 정치 입문은 13대 때 국회에 등원한 강 전 대표가 빠르다. 손 대표는 14대 때 93년 보궐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당선됐다. 그때 강 전 대표는 당 대변인을 맡아 손 대표의 선거를 지원했다.

 두 사람의 인연이 틀어지게 된 건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였다. 강 전 대표의 중재로 마련된 경선규칙에 손 대표는 불복하고 당을 떠났다. 당시 강 전 대표는 강원도 백담사에 머물며 탈당 결심을 가다듬던 손 대표를 설득하려고 찾아나섰지만, 손 대표가 강한 거부반응을 표출해 발걸음을 되돌렸다.

성남=남궁욱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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