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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거문도 섬쑥 VS 강화도 약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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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거문도의 봄은 쑥으로 시작해 쑥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섬 전체가 온통 쑥밭이다. 해양성 기후 덕택에 다른 지역보다 나트륨 등 미네랄이 풍부해 전국 어디에서나 최상급 대우를 받는다.


쑥은 누가 뭐래도 봄을 대표하는 나물이다. 동네 담벼락에도, 논두렁에도, 들녘에도, 심지어 무덤가에도 쑥은 돋아난다. 예전 우리 시골의 아낙이나 처녀들이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쪼그리고 앉아 소쿠리에 가득 뜯어 담아오던 것이 쑥이다.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어린 쑥은 남도 섬에서는 이르면 1월부터 나기 시작해 강원도 북쪽 끝 고성 지방에서는 5월까지 뜯을 수 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쑥은 있다. 하고 많은 쑥 중에서 섬쑥이 유난히 인기다. 효능과 영양 모두 뭍에서 나는 쑥보다 낫단다. 과연 그럴까. 그래서 섬쑥으로 유명한 전남 여수 앞바다의 거문도를 찾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쑥을 생산하는 곳이다.

글=이석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 거문도의 봄은 쑥이다

거문도 장촌 마을 뒤편에서 바라본 서도 풍경. 조용한 어촌 마을이지만 매년 봄 쑥으로 가구당 500만원 가량을 번다.

전남 여수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2시간 남짓 달려야 거문도에 닿는다. 뱃길만 해도 100㎞가 넘는다. 배에서 내리면 서도 선착장인데,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정면에 쑥밭이 펼쳐진다. ‘장촌’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로, 마을 뒤편 언덕배기가 온통 쑥밭이다.

 3월 말 거문도에서 맞는 바람은 따스하다. 뭍은 아직 봄바람 속에 찬 기운이 남아 있지만 남도 맨 끝자락에서 맞는 해풍은 온화하고 부드럽다. 이 따뜻한 바람 덕분에 거문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자연산 쑥을 생산·출하하는 지역이 됐다.

 여수농협 삼산지점에 들렀다. 거문도는 행정구역상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다. 김기운 지점장에게 설명을 들었다.

 “거문도는 1월 평균 기온이 영상 2도쯤 됩니다. 기온도 높은 편이지만 일조량도 풍부합니다. 다른 지역보다 먼저 쑥을 뜯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지요.”

 그러나 올해는 예외다. 말로만 듣던 수도관 동파 사고가 났을 만큼 거문도도 올겨울엔 이상 한파로 몸살을 앓았다. 이 바람에 쑥도 수확 시기가 늦어졌다. 예년보다 보름 정도 늦은 2월 21일께 겨우 첫 수확을 했다.

 거문도에서는 보통 3월 말까지 생쑥을 뜯는다. 이때 나는 생쑥은 바로 뭍으로 올라가 나물이나 국에 들어간다. 거문도 쑥이 가장 경쟁력이 있는 때다. 4월 말부터 생산되는 쑥은 냉동쑥과 차 같은 가공품으로 팔린다. 섬에서는 계속 쑥이 나지만 4월이 되면 뭍에서도 쑥이 나기 때문에 가공품 쪽으로 판로를 튼 것이다.

 거문도에서 서울 경동시장으로 올려보내는 쑥의 월별 가격은 2월에는 ㎏당 9000원 선, 3월엔 5000원 미만, 4월부터 1000~2000원으로 떨어진다. 거문도 쑥은 6월 말까지, 한 해 보통 4회 수확한다. 그러니까 거문도의 봄은 쑥과 함께 시작해서 쑥과 함께 끝난다.

 # 연 10억원 벌어오는 효자

거문도 아낙이 따뜻한 봄햇살을 맞으며 쑥을 뜯고 있다.



요즘 거문도에서 쑥 뜯는 일은 아낙들만의 일은 아니다. 할아버지가 더 많다. 밭에서 만난 이귀순(76) 할아버지도 “30년 가까이 밭에 쑥을 재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3000여㎡(약 1000평) 규모로 쑥 농사를 지어 3∼4월 두 달 동안 500만원 가량 가욋돈을 번다.

  “옛날엔 여기도 봄에 먹을 게 없기는 마찬가지였어. 숲이나 밭고랑에서 쑥 뜯어 국 끓이고 쑥버무리 해서 먹었지. 허기 달래려고 먹었던 쑥이 이제 보니깐 보약이었던 거야.”

 흔히 양대 섬쑥을 얘기하는데, 하나가 거문도 쑥이고 다른 하나가 강화도 약쑥이다. 거문도 쑥은 유난히 인기가 높다. 농촌진흥청에서 쑥 시장 규모를 파악하지 못해 거문도 쑥의 시장 비율을 알 수는 없지만, 거문도 쑥은 전국 어디에서도 최상급 대우를 받는다.

 갓 뜯어낸 쑥의 향을 맡았다. 생각보다 강하지는 않았다. 알싸하고 상큼한 향이 진하기보다는 은은하다고 할까. 거문도 섬쑥은 내륙에서 나는 쑥보다 나트륨 성분이 5배 이상 많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칼륨도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뭍에서 100㎞ 이상 떨어진 청정지역인 데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머금은 자연산 염분 덕분이다.

 거문도에서는 지난해 189가구가 43ha에 쑥을 재배해 430t을 생산했다. 섬 전체가 쑥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10억원을 헤아린다. 거문도영농조합법인 남주현 대표는 “앞으로 생산량 1500t, 소득 40억원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쑥 캐는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더 많아 보이는 것도, 봄마다 섬 주민 대부분이 쑥 캐러 들판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민은 있다. 이 할아버지의 토로다.

 “젊은 사람이 없다 보니 생산량이 줄어들까 봐 걱정이야. 노인네들밖에 없어. 쑥 농사 짓기가 힘에 부치는 거지. 작년엔 나도 1000㎏ 했는데 올해는 900㎏밖에 못 했어.”

# 강화 약쑥 - 향 강하고 맛은 써, 대부분 약용으로

한가로이 쑥밭에서 노닐고 있는 찌르레기들.

남해바다 거문도에 비해 서해바다 강화도에서는 쑥도 늦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3월 중순은 넘어야 밭에 뿌리를 심는다. 그러면 한 달쯤 뒤 쑥이 흙을 헤집고 고개를 내민다. 일단 고개를 내민 쑥은 이후로 말 그대로 쑥쑥 자란다. 강화약쑥 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고유진 회장은 “지금은 밭 전체가 흙으로 덮여 있어 어디가 쑥밭인지 구분이 되지 않지만 강화약쑥은 4월 중순만 지나면 금세 어른 무릎 정도까지 자란다. 농업기술센터가 있는 삼성리 인근은 온통 초록색 쑥 바다로 변한다”고 설명했다. 5월 말이나 단오쯤 되면 1m 가까이 자란다. 강화도 쑥은 그맘때 첫 수확을 한다. 수확이 완전히 끝나는 시점은 8월 말이다.

 아직 강화도에는 쑥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생산한 쑥차를 마셔봤다. 향이 무척 강했고, 혀끝에 느껴지는 맛도 매우 썼다. 왜 식용으로 안 쓰이고 약용으로 쓰이는지 단박에 알 것 같았다. 강화도에서 나는 쑥은 주민끼리 소량으로 거래되는 것 말고는 전량이 약용으로 쓰인다. ‘강화약쑥’은 강화군청에서 만든 강화도 쑥 브랜드다. 고 회장은 “거문도에서는 잎만 따서 먹지만, 강화도 약쑥은 쑥대(줄기)도 말려서 약용으로 사용한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나물이나 국으로는 먹지 못하지만, 쑥떡이나 즙으로는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강화도는 지난해 77개 농가에서 55ha를 재배해 말린 쑥으로 397t을 생산했다. 수익은 17억원에 달했다. 생쑥이 아니라 쑥환·약용으로 만든 가공쑥이어서 이윤이 세다. 인천시 강화군 농업기술센터 정선아 연구원은 “약쑥 연구회 일부 회원은 논 농사 짓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 섬쑥이 좋은 이유 - 염분 섞인 바닷바람 때문

섬쑥이 좋은 건 말 장난 같지만 섬에서 난 쑥이기 때문이다. 육지에서 격리돼 뭍보다는 오염이 덜 됐다는 뜻이다. 섬에선 논 농사가 힘들다. 물을 가두기 힘든 화강암이나 사양토 성분이 많아서다. 뭍에서는 어떻게든 경작했겠지만, 섬에서는 허허벌판으로 남겨놓는 경우가 많다.

 그 허허벌판에서 섬쑥이 난다. 물을 가두기 힘든 섬의 토양 성분은 되레 쑥을 재배하는 데 유리한 조건이 됐다. 물 빠짐이 좋고 영양공급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 아직까지는 쑥에 농약을 치지 않는다. 섬에 사는 할아버지·할머니가 소일 삼아 시작한 일이어서다.

 섬쑥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해양성 기후라는 생육환경이다. 거문도 섬쑥을 연구하는 전남 여수시 농업기술센터 박세진 연구원은 “주위가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자라는 쑥은 염분이 적당히 섞인 해풍을 오랫동안 머금고 자라 뭍의 쑥보다 나트륨 등 미네랄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다”고 밝혔다. 천일염이 다른 소금보다 좋은 이유와 같은 이치다.

 섬쑥은 일반 쑥하고 생김새도 다르다. 우선 참쑥인 거문도 쑥과 강화도 약쑥은 일반 쑥에 비해 키가 크다. 거문도 쑥은 50㎝, 강화도 쑥은 1m에 이른다. 반면 논두렁이나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쑥은 30㎝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다.

 강화도 약쑥의 특징도 있다. 강화도 쑥은 줄기와 뒷면에 거미줄 같은 흰 털이 빽빽이 덮여 있다. 거문도 쑥이나 일반 쑥은 잎 뒤쪽에 털이 많지 않다. 강화도 약쑥은 품종이 두 종류다. 정선아 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사자발쑥은 잎이 사자발 모양으로 갈라져 있고 잎끝이 뾰족하다. 예부터 자생하는 ‘싸주아리’라는 품종은 잎 형태가 새 날개 모양이고 전체적으로 평평하다.

# 쑥의 효능 - 음식은 기본, 약으로도 쓰이죠

쑥의 쓰임새는 정말 다양하다. 국·나물 등 음식으로도, 차·즙 등 음료로도 먹을 수 있다. 쑥탕·쑥찜질방도 있고, 베개나 방석에 넣기도 한다. 비누·화장품 등 여성용품으로도 사용된다. 다 쑥의 효능 때문이다. 쑥차를 마시면 알레르기성 질환이나 위궤양에 좋고, 쑥으로 목욕을 하면 혈액순환과 피부 미용에 좋고, 쑥 연기는 치질이나 무좀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을 보면 “쑥은 맛이 쓰면서 매워 비·산·간 등에서 기혈을 순환시키며 하복부가 차고 습한 것을 몰아내는 효능을 지니고 있다. 독이 없고 만병을 다스린다. 특히 부인병에 좋고 자식을 낳게 한다”고 나와 있다. ‘애쑥국에 산촌 처자 속살 찐다’는 속담이 전해 내려올 만큼 여자에게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선아 연구원은 “쑥에는 칼슘·비타민 A·비타민C 등이 많이 들어 있어 면역력을 높여주고 감기 예방에 도움을 준다”며 “쑥이 비만·암·당뇨를 막는 효과가 있다는 최근 임상실험 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TIP 1년 내내 먹으려면 …

쑥은 한 철 나물이다. 오래 두고 먹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쑥을 오래 보관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생쑥을 살짝 데친 다음 소금으로 문질러 물기를 짠다. 그리고 비닐봉지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한다. 1년 내내 먹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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