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사라진 시대엔 저평가된 소외 업종 주목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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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호 24면

올 1월 하순 이후 우리 주식시장에는 조정의 기미가 분명해지고 있었다.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확연한 경기회복 조짐과 신흥국가에서 일고 있는 인플레 조짐이 지난해부터 올 연초까지 1년 이상 신흥국가로 향하던 글로벌 투자 자금의 흐름을 완전히 역전시켰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2월 말 이후 불거진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과 3월 11일의 동일본 대지진은 시장의 조정을 상당히 장기화할 수 있을 만한 메가톤급 악재로 여겨졌다.

시장 고수에게 듣는다

그러나 두 가지 악재는 그 당시에는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증시의 단기 변동성을 키웠지만 오히려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장기화될 듯하던 시장의 조정이 단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어느새 코스피 지수가 1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조정이 끝난 듯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진행형인 두 가지 악재 중에서 우선 중동발 불안은 세계 최대의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 등으로 확산하지만 않는다면 2008년과 같은 유가 급등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이 되었다. 게다가 2000년대 후반의 원유 가격 급등기에 원유 생산시설이 크게 늘어난 것도 유가 전망을 둘러싼 지나친 비관론을 잠재웠다.

동일본 대지진은 엄청나게 불행한 사고였지만 우리 증시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지진 이후 3주일이 지난 지금 세계 주요국 시장 중에서 한국 증시의 상승률이 가장 크다. 우리 경제는 초기에 그 발전 모델을 상당 부분 일본으로부터 빌려왔고, 또 경제 발전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도 일본에 많이 의지했다. 그래서 우리의 산업 구조는 일본과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게 됐고, 또 그 결과로 현재 한국과 일본의 기업들은 경쟁 또는 보완 관계에 있다. 최근 한국 대기업들의 수준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돼 일부 품목에선 오히려 앞서는 분야도 있다. 일부 핵심부품이나 장비를 일본에 의지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우리 기업들은 이번 기회에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게다가 완제품 제조 과정을 자기 그룹 내에서 해결하려는 우리 기업의 관행으로 일본 제품 의존도를 낮추게 됐다. 이번 지진 여파로 미국이나 유럽·대만 등 기업이 일본산 부품을 제때에 조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때, 반도체·자동차 등 우리 기업들의 생산이 비교적 원활히 진행된 것도 이 덕분이다. 이와 같이 동일본 대지진은 증시의 조정 과정을 단축해 주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주도주였던 정유·화학·자동차 업종의 주가 강세를 더욱 지지해 주는 촉매로 작용했다.

그럼 이제는 근본적이라 할 수 있는 기업의 이익과 가치(밸류에이션)를 중심으로 전망하는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우선 수출 호조로 가동률이 높아진 미국 기업들은 고용 및 투자를 늘릴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정보기술(IT) 기업들에 글로벌 금융위기와 지진 이후 강화된 시장 지위를 본격적으로 활용할 호기가 될 것이다. 여기에다 중국은 오랜 긴축의 효과가 과잉 유동성의 감소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내수경기 회복이 가시화되면 중국 내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확고한 우리 소비재 기업들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다. 게다가 물가를 잡기 위해 원화가치의 일정 부분 절상을 용인한 우리 정부의 자세 전환은 그동안 물가를 위해 희생을 강요받은 내수 대표 기업과 항공·여행 및 금융기업들의 향후 이익에 대한 불확실성을 많이 제거해 줄 것이다. 게다가 이들 기업은 주가가 장기간 소외돼 저평가 매력도 꽤 큰 상태다.

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우리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 끊임없이 수익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내 기관들은 그동안 과도하게 집중해 온 특정 업종과 종목에의 집중도를 줄이는 선택을 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불확실성의 감소라는 새로운 상황하에서 수익성 개선 가능성이 크고, 저평가 매력이 있는 앞서 언급한 소외 그룹으로의 이전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보다 주가가 추가 상승하고 펀드로부터 돈이 빠지는 상황이 계속될 것을 감안한다면, 상대 수익률 우위를 지키려는 국내 기관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 전체의 지수 상승은 완만한 가운데 업종 및 종목 간의 수익률 재편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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