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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헤지펀드 도입 “마지막 빗장까지 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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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김석동(사진) 금융위원장의 꿈은 ‘한국 금융의 세계화’다. 평소 “한국 경제가 세계 10대 강국으로 올라섰지만 금융 분야는 아직까지 한참 뒤처져 있다” “한국이라고 골드먼삭스 같은 투자은행(IB), 소로스의 팬텀펀드 같은 헤지펀드가 안 나올 이유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지 못한 이유는 ‘규제 때문’이라고 한다. “실력 있는 선수가 내공을 펴기엔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취임 이후 “금융산업을 화끈하게 바꿔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겠다”고 공언해왔다.

 31일 그 혁명이 시작됐다. 첫걸음은 헤지펀드 전면 허용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자본시장제도개선 민관합동위원회’ 2차 회의를 열어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방안은 공청회 등 업계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이달 말 자본시장법 개정안으로 확정된다.

 ‘한국형 헤지펀드’의 법률 명칭은 가칭 ‘전문사모펀드’다. 이 펀드에 대해선 헤지펀드의 본래 역할인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굴레를 풀어준다. 투자 대상과 방식에 대한 제한이 아예 없다. 돈을 벌 수 있다면 주식·채권·파생상품 등 어느 분야에든 투자하고 공매도·헤지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팬텀펀드나 타이거펀드·폴슨앤컴퍼니 등 대표적인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발 빠르게 돈을 버는 비결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잠시 주춤했던 헤지펀드는 지난해 자산규모가 1조9000억원으로 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 세계 헤지펀드 9237개의 지난해 연평균 수익률은 10.5%였다. 국내외 공·사모 펀드로선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현재는 헤지펀드와 가장 가까운 사모투자전문회사(PEF)도 경영권 참여나 사업구조 개선 목적으로만 투자해야 한다. 헤지 목적 이외의 파생상품 투자도 엄격히 제한돼 있다.

 금융위는 그러나 한국형 헤지펀드의 실력이 쌓일 때까지는 건전성 규제를 하기로 했다. 전문사모펀드의 외부자금 차입한도와 파생상품 거래한도는 펀드재산의 400%를 넘지 못한다. 자격이 없는 헤지펀드가 난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등록도 의무화할 방침이다. 금융위는 “명칭에 ‘한국형’이란 말이 들어간 건 초창기 혼란과 무리한 투자를 방지하기 위해 건전성 감독을 한다는 의미”라며 “이를 빼면 헤지펀드 도입을 위한 마지막 빗장까지 다 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새로운 금융산업의 발전동력을 찾을 때가 됐다”며 “시장과 산업의 목소리를 수렴해 자본시장법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회의 뒤엔 “헤지펀드에 대한 내용을 보도자료에 꼭 넣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평소 “자본시장법을 내가 만들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하고 싶은 것의 60%밖에 못 넣었다”고 토로하는 그는 다음번엔 투자은행(IB) 육성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편 금융위는 이날 한국거래소가 독점하고 있는 증권거래 시스템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복수의 정규 거래소보다는 증권사끼리의 대체거래시스템(ATS)을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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