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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주창자에서 ‘경제검찰’로 … 공정위, 30년간 과징금 3조 부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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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김동수 공정위원장

“공정거래법, 그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김재익)

 “경제를 정부의 간섭 없이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고 독점의 힘을 배제하자는 거죠. 그래야 물가도 잡힙니다.”(전윤철)

 1980년 여름. 전윤철 당시 공정거래정책관실 총괄과장이 김재익 국보위 경제과학위원장의 호출을 받고 자택으로 불려가 나눈 대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태동하는 순간이었다. 1960년대 이후 관료와 재계의 반대에 번번이 좌절됐던 공정거래법의 도입은 이후 경제 실세 김재익의 ‘자율·안정·개방’ 모토와 신군부의 강력한 힘을 추진력으로 삼아 발효됐고 1981년 공정위가 탄생했다. 1일로 딱 30년을 맞는다.

 30년간 공정위는 생소한 ‘경쟁주창자’에서 막강한 ‘경제검찰’로 변모해왔다. 이 기간 동안 모두 4만3152건의 사건을 처리하고 3조82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첫 10년간은 과징금 부과가 단 1건에 불과했다. 공정위 한 간부는 “한편으론 기업 불러다 ‘야단’치고, 한편으론 각종 규제 철폐를 놓고 다른 부처들과 싸우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이후 공정위의 성장 과정에는 우리 경제사의 굴곡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1989년 10개 대형 백화점들이 파격세일을 한다며 할인가격을 실제보다 과장한 사건에 여론이 들끓자 정치권은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1990년 공정위를 경제기획원에서 독립시켰다. 이 시기를 전후해선 출자총액제한제도(86년), 채무보증제한제도(92년) 등을 잇따라 도입하는 등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억제에 주력했다. 여기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대선 출마 후유증도 크게 작용했다. 96년에는 위원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됐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기업지배구조를 개혁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게 최우선 과제로 여겨졌다. 2000년대 들어선 국내 기업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2005년), 퀄컴(2009년) 등 굵직굵직한 다국적 기업에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하며 주목을 받았다. 최근엔 대기업-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협약 체결을 적극 유도하는 등 ‘동반성장 문화의 촉진자’를 자임하고 나섰고, 소비자보호 업무도 큰 축이 됐다. 김학현 공정위 상임위원은 “행정과 심판, 소비자 보호, 상생협력 등의 기능이 합쳐져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구조를 갖게 됐다” 말했다.

 하지만 커진 몸집과 힘만큼이나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특히 독립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최정표 건국대(경제학) 교수는 “공정위는 시장경제의 근간을 지키는 핵심 기관이자 준사법기관으로 독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본연의 역할인 경쟁촉진과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대신 요즘처럼 물가감시, 동반성장 등 행정성 구호가 너무 앞서 가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공정위 30년, 어떤 일이 있었나

1981년 공정거래법 시행, 경제기획원 내 공정거래위원회 신설

    동양맥주에 첫 시정권고(재판매가격 유지행위 등)

1985년 하도급법 제정

1986년 상호출자금지·출자총액제한제 도입

1988년 정유사 카르텔에 첫 과징금(21억원) 부과

1989년 대형 백화점 사기 세일 사건

1990년 경제기획원에서 독립

1996년 위원장 장관급으로 격상

1997년 경제분야 규제개혁 총괄

1999년 막걸리 공급구역 제한 폐지, 변호사 등 9개 전문 자격사 보수 자율화

    하도급 서면 실태 조사 시작

2005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 과징금(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KT·하나로통신 등에 967억원 과징금(시내전화 담합)

2006년 소비자원 이관

2007년 동반성장협약 체결 시작

2009년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퀄컴에 2731억원 과징금(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2010년 액화석유가스(LPG) 6개사 담합에 6689억원 과징금 부과(역대 최대)

자료 : 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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