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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여전히 가수인 이들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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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재숙
문화스포츠 에디터

치열한 경쟁 탓에 피곤한 한국인들이 경연(競演) 형식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열광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폴 포츠와 수전 보일을 탄생시킨 영국발 재능 오디션 리얼리티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프로들이 화제를 낳고 있다. 나라 안팎의 온갖 불행과 탄식과 격변을 뒤로하고 많은 이들이 TV의 예능 프로그램 하나 때문에 눈물짓고 감탄하며 격분한다.

 ‘나는 가수다’라는 그 제목부터가 음미할 만하다. 아니 할 말로 누가 가수 아니라 했느냐는 건데, 해석하자면 아마 ‘나는 진짜 가수다’의 의미일 것이다. 외모나 춤 따위는 접어두고 노래만으로 승부하는 가수가 진짜 가수 아니겠는가. 비주얼 과잉, 오디오 기술 남용의 시대에 진짜 노래로 감동을 줄 수 있는 가수 말이다. 사실, 최근 대중가요가 이토록 심금을 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이 많아졌다. ‘진짜’와 같은 수식어도 필요 없이 ‘나는 가수’라는 자부심에 갈채를 보내고 싶은 요즈음이다.

 ‘슈퍼스타 K2’를 이은 ‘위대한 탄생’은 뭇사람들이 노래방에서 꽤 잘 부른다는 노래들이 실은 얼마나 소음에 가까운 것이었는지, 가수들의 천부적인 재능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일깨워 주었다. 작곡과 편곡의 세계는 얼마나 다채롭던지. 더불어 감성의 세계에 몸 바친 가수들이 멘토(mentor·조언자)가 되는 순간, 그들은 또한 얼마나 지적인 예술가로 변신하던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된 독일의 어느 작가는 직업을 묻는 질문에 ‘시인’이라고 답하면서 현실과 문학의 그 소름 돋는 괴리를 맛보아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수많은 시신을 길가에 대충 수습해 놓은 대지진의 현장에서 현을 퉁기며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있다면 그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일지언정 음악은 지극한 슬픔의 깊이에서도 솟아나는 것이다.

 사람 세상에 먹고사는 것, 먹여 살리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므로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탄생한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소설 『개미』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생각을 좇다 보면 인간이 과연 개미보다 우월한 존재일까 의심하게 된다. 개미들의 사회 시스템과 공동체를 위한 무한한 헌신 앞에서 인간으로서 주눅 드는 점도 사실 없지 않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들에겐 음악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과연, 음악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그래서 선현은 ‘예악(禮樂)’이라 묶어 일렀나 보다.

 이 프로에 대해 ‘이미 가수인 이들이 왜 경연을 해야 하느냐’는 원칙적인 불편함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런 리얼리티 쇼 형식의 무대가 가수와 청중 모두에게 음악에 대한 어떤 진지함을 새롭게 불러일으키고 기쁨과 감동을 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의는 충분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예악의 예(禮)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악(樂)이 너무 진지해지면서 예절의 영역까지 침범해 버린 걸까. 기본 포맷 자체가 개개인의 사정을 돌볼 수 없는 성격이었는데도, 하필 가장 연륜 오랜 가수가 탈락자로 호명되면서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버렸다. 보안의 필요성 때문에 방청객을 모두 내보낸 뒤에 발표하다 보니, 가수들이 너무 자신들만의 범주 속으로 매몰돼 버린 정황도 느껴진다.

 예기치 않게 이 리얼리티 쇼 가요 프로그램은 한국인들 모두에게 내재하는 모종의 문제점을 건드렸다. 우리는 역시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냉정히 적용하는 데 너무 취약한 것 아닌가. 또는 ‘패배는 곧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생존법칙에 붙잡힌 것은 아닐까. “꼴찌를 해도 김건모는 김건모”라는 드라마 작가 김수현의 당연한 지적이 이해될 수 없는 사회인가.

 그러나, 이런 모든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가수 예찬을 멈출 생각은 없다. 가수들이여, 그대들이 가수임을 맘껏 외쳐라. 그러곤 좀 생뚱맞지만 이렇게 덧붙여도 좋다. “너는 기자냐?”

정재숙 문화스포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