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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전사, 손정의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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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孫正義·42·일본명 손 마사요시)가 가장 숭배하는 영웅은 일본 근대화를 위해 투쟁한 검객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다. 孫은 지난 2월 사카모토의 일대기를 그린 아마추어 드라마를 무대에 올렸다. 장면 장면 사이 연기자들은 일본의 경제위기를 들먹였다. 사카모토로 扮한 孫은 목검을 치켜들고 젊은 기업인들에게 ‘결단력을 지닌 사무라이’가 돼줄 것을 요구했다.

현대판 사무라이인 孫은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일본 역사상 결정적인 순간에 떠돌이 사무라이인 이른바 ‘로닌’(浪人)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곤 했다. 사카모토는 낙후된 도쿠가와(德川) 막부(幕府)를 무너뜨리고 일본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데 한몫했다.

그로부터 1백 년 뒤 발명가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가 구세주 역을 맡아 2차대전의 폐허 속에서 기업제국을 일궈냈다. 점령군인 미국인들로부터 기술을 배워 세계 굴지의 소니社를 세운 것이다.

오늘날 사무라이의 영웅적 임무를 떠맡은 인물이 바로 孫이다. 그는 혼다·미쓰비시(三菱)·소니를 제치고 일본 5위의 대기업으로 올라선 소프트방크의 회장으로 천년을 마감하고 있다. 메릴 린치社의 최근 연구 보고서는 그를 일본 ‘인터넷 쓰나미(海溢)’의 선두주자로 꼽았다.

인터넷 사업의 파고(波高)를 이끌고 있다는 말이다. 인터넷에 정통하고 일본 경제를 세계시장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는 신세대 기업인들은 孫이 이끄는 인터넷 쓰나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대세는 여전히 ‘일본주식회사’가 거머쥐고 있지만 첨단 기술狂들은 일본주식회사의 그늘 속에서 투명하고 경쟁력 있는 사회 토대를 쌓고 있다.

뉴스위크가 올해의 아시아人으로 孫을 선정한 것은 그가 지닌 용기와 비전, 그리고 고인 물 같은 기존체제를 깨뜨릴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재계 지도급 인사 가운데 孫만큼 일본주식회사의 기존 관행을 뒤흔들고 있는 사람도 없다. 그는 전자상거래 도입에 한몫하고 벤처자본 폭증에 불을 댕겼으며 공개적인 주식거래를 주도했다. 그가 추진중인 사업들은 모험도 마다지 않는 창조적 기업인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일본주식회사의 완고한 관행·권위주의·연줄에 질식했을지 모른다. 孫은 첨단기술 관련 신생 기업들을 겨냥한 나스닥 재팬 개장 계획으로 증시를 진정한 의미의 자금줄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2000년 말 나스닥 재팬에서 거래가 시작되면 젊은 기업인들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기존 금융권에 더 이상 아부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일본주식회사가 孫을 건방지고 심지어 귀찮은 존재로 치부했지만 현재의 승자는 孫이다.

10년에 걸친 경기침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는 일본 정부와 재계는 그에게 자문은 물론 손까지 벌리고 있다. 前 대장성 재무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는 孫이 “기존체제의 일부가 됐음”을 인정했다. 간단히 말해 로닌인 孫이 재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격의없는 그의 태도를 보면 그럴 것 같지가 않다. 도쿄(東京) 중심가 고층빌딩에 자리잡은 그의 어수선한 집무실에서 정장 차림과 딱딱한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일본주식회사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업무와 관련된 오찬을 마치고 돌아오면 넥타이부터 풀어던진다. 골프狂이라는 소문을 실감나게 만드는 흔적들도 있다(孫은 자택 지하실에 전자 골프 코스까지 마련해 놓고 스트로크를 연습할 정도다).

벽에는 골프친구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社 회장과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걸려 있다. 책상 위에는 재무보고서가 메모·시사잡지,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에 대한 오디오 북과 함께 어지러이 놓여 있다.

孫은 컴퓨터로 소프트방크 주가를 검색하며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인터넷 혁명의 다음 전투를 구상한다.
그의 말을 한 번 들어보자.
“현재 많은 젊은 기업인들이 내가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인터넷 기업인들은 실리콘 밸리의 사업방식을 제대로 소화해내고 있다. 앞날은 매우 낙관적이다.”

孫은 역경을 적극적으로 헤쳐 나아가는 방법도 오래 전 터득했다. 재일 한국인 3세인 孫은 외국인이 홀대받는 일본에서 어렸을 적부터 틀을 깨기 시작했다. 그는 규슈(九州)의 재일 한국인 집단촌에서 태어났다.

60여 가구에 이르는 마을 주민 대다수는 일본의 한국 강점기 당시 강제노역에 징집된 한국인들 후손이었다. 그들은 돼지를 치고 막노동에 종사했다. 재일 한국인이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웃 일본인들과 접촉이 별로 없었던 그들 한국인은 끊임없는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인근에서 성장한 중년의 한 샐러리맨은 “한국인 아이들에게서는 돼지우리 냄새가 났다”며 “일본 아이들은 그들에게 ‘야, 조센징!’하고 놀려대며 돌을 던지곤 했다”고 말했다. 대다수 재일 한국인 가정과 마찬가지로 孫의 식구들 역시 ‘야스모토’(安本)라는 가짜 姓을 사용했다. 일본인처럼 보이기 위함이었다.

孫은 그나마 행운아였다. 아버지의 빠찡꼬 사업이 번창하면서 가족은 도시로 나왔다. 4형제 가운데 막내로 현재 인터넷 사업 자문업체 인디고를 운영중인 다이조(泰藏)는 자식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시던 아버지 모습이 뇌리에 생생하다.

“아버지는 나를 무릎 위에 앉히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이조는 천재’라고 읊조리곤 하셨다.” 차남 손정의는 후쿠오카(福岡) 인근의 한 명문 고교에 합격했지만 입학 6개월만에 중퇴하고 아버지의 마지 못한 허락 아래 미국으로 건너갔다.

孫의 고교시절 담임교사 아베 이쓰오(阿部逸朗)에 따르면 孫이 당시 일본 1류 대학에 들어간다 해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孫은 이렇게 회상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했다. ‘일본 사회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인간은 다 같은 인간이고 열정과 사고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든 동등할 수 있음을 증명하겠다’고. 내가 더욱 열심히 노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州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손정의는 더 이상 일본인 행세를 하지 않겠다고 작정했다. 아베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孫은 일본을 떠난 뒤 나와 학교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자신의 姓은 야스모토가 아니라 孫이라고 밝혔다.

서류 절차상 편의를 위해 본명이 필요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지만 孫 스스로 오랫동안 짊어져 온 짐을 벗어던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孫은 고교 졸업 후 오클랜드 소재 홀리 네임스大에 잠시 다니다 캘리포니아大 버클리 캠퍼스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한편 그는 부업삼아 아버지를 통해 비디오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미국으로 들여오고 번역 프로그램을 개발, 훗날 샤프전자에 1백만 달러를 받고 팔았다. 캘리포니아大 버클리 캠퍼스의 물리학 명예교수 포레스트 모저는 “아내에게 ‘孫이 10년 안에 일본을 휘어잡게 될 것이니 그를 낚아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孫은 버클리 졸업 전 이미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소프트웨어 제작에서부터 병원 설립에 이르기까지 40개 사업을 구상중이었다[유학중 만난 부인 오노 마사미(大野優美)는 저명한 의사의 딸이다]. 그의 구상에서 최상위에 놓여 있던 것이 컴퓨터 관련 사업이다.

1981년 소프트방크社를 설립한 孫은 처음부터 1류 전자상점에 자사(自社) 제품을 납품하기로 계약하고 일본 최대의 소프트웨어 보급업체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일본의 대다수 신생기업과 마찬가지로 소프트방크 역시 대기업을 선호하는 배타적인 기업문화에 맞서 싸워야 했다. 자본을 끌어들이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孫은 세일즈맨으로 트럭 운전기사들을 고용해야 했다. 자질이 있는 인력은 소프트방크社를 기피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도 못돼 소프트방크社는 두 개의 컴퓨터 관련 잡지를 발간하고 일본에서 갓 싹트기 시작한 정보기술 산업과 함께 성장을 거듭했다.

1994년 소프트방크社 주식공개와 더불어 孫은 억만장자가 됐다. 1년 뒤 그는 태평양을 가로질러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대대적인 기업 매수에 나섰다.

그는 컴퓨터 산업 전시회인 컴덱스 운영권과 첨단기술 관련 출판사인 지프-데이비스를 약 30억 달러에 사들였다. 1996년에는 일본의 아사히(朝日) TV 대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뉴스 코퍼레이션과 손잡기도 했다. 1997년 후반 소프트방크社 주가는 떨어졌다. 자산관리 전문업체인 계열사 MAC가 도산할 것이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孫은 전략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1년 뒤 그는 출판·컴퓨터·금융서비스 관련 기업의 분리를 약속했다. 그리고 대부분 지켰다. 孫은 기업 인수합병 사업을 확대했다. 표적은 미국의 첨단 인터넷 시장에서 개발된 신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었다. 그들 기업을 일본에서 그대로 복제, 설립한 孫은 지금도 같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孫은 일본에서 인터넷 사업의 제 1인자로 급부상했다. 소프트방크社의 콘텐츠 사업 가운데는 야후! 재팬도 포함된다. 야후! 재팬의 대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소프트방크社는 새 합작기업 수십 개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웹MD의 온라인 의료 서비스망을 일본에 그대로 옮겨 놓기 위한 협상도 있었다. 소프트방크의 E*트레이드 재팬社는 온라인 주식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社 및 도쿄에 본사를 둔 텝코전력과 합작으로 일본 전역 수백만 가정에 광대역 인터넷 회선을 제공함으로써 일본전신전화(NTT)의 전화사업 독점체제를 무너뜨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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