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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으로 자위대 위상 높아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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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마이클 그린
미국 CSIS 고문

3월 11일 동일본을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사고는 일본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세계은행에 이어 일본 정부도 이번 재난의 피해액이 2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1995년 고베(神戶) 대지진 피해는 1000억 달러에 달했다. 고베는 이번에 피해를 본 도호쿠(東北) 지역보다 훨씬 비중 있는 공업지역이었으며 중요 항구였다. 한 예로 이번에 강타당한 센다이(仙臺)항은 일본 전체 선박 물류량의 1%밖에 안 된다. 고베 대지진은 일본 성장률에도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반도체용 웨이퍼 부족 현상이 세계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지만 이번에도 지진과 쓰나미 피해만 보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감소율은 0.25% 정도에 그칠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에는 원전 사고로 인한 불확실성이 아직 남아 있다. 일본은 전력의 30%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으며 특히 도쿄전력의 원전의존도는 50%에 달한다. 기술적 이유로 일본 서부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동부로 송전할 수 없으며 가동률이 50% 정도인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더 가동한다고 해도 도쿄전력 산하의 후쿠시마(福島) 원전 및 다른 2곳의 발전소 폐쇄로 인한 전력 부족을 메우기 어려운 형편이다. 따라서 앞으로 몇 달 동안은 제한 송전이 불가피하며 전력 수요가 높아지는 여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은 고베 대지진 당시에 비해 일본의 재정적자 규모가 훨씬 커졌다. 무디스는 일본 정부 발행 채권 이자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나마 일본 정부 채권의 90%가 일본 안에서 소화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일본은 소비세나 고속도로 통행료 등을 인상하고 채권 발행을 통해 저축을 고갈시키지 않고도 피해복구 비용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경제는 20년간 침체상태였다. 어떤 이들은 이번 위기가 일본 경제를 좀 더 시장지향적으로 만들어내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이 케인스식 경기부양책을 택함으로써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 진행)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정치상황도 영향을 줄 것이다. 일본 정부는 과거 재해 경험에 입각해 지진과 쓰나미에 잘 대처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대처는 미흡하다. 이에 따라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늦여름이나 가을께 실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후임이 누가 될지는 불분명하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외상은 지지도가 높지만 사소한 정치자금 스캔들로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분간 등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은 이번 위기로 국민적 주목을 받았지만 아직 총리 후보로는 이른 편이다.

 재앙에 신속하면서도 용감하게 대처한 자위대에 대한 지지는 더 커질 것이다. 재정 문제 때문에 자위대 예산이 크게 늘 순 없겠지만 어떤 정치인도 예산을 줄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갈수록 힘을 받을 것이다.

 미·일 관계는 크게 강화됐다. ‘친구작전’(Operation Domodachi·미군이 벌인 재난구호작전)은 사상 최대 규모의 양국 합동작전이었다. 미·일 동맹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76%로 올라갔으며 더 높아질 것이다. 한·일 관계도 개선될 것이다. 한국에서 답지한 온정은 일본 국민 사이에 오래 남을 것이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일본이 사할린산 LNG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개선될 전망이다.

 일·중 관계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9월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 분쟁으로 인한 일본 내 여론 악화를 만회하기 위해 지진 직후 신속하게 재난구조대를 파견했다. 중국 언론은 일본 거주 중국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친절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일·중 간 긴장은 구조적인 것이어서 본질적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일본 근해에서의 활동을 지속하고 있어 양자관계는 개선되기 힘들다. 기껏해야 센카쿠 열도 분쟁 후 86%까지 치솟았던, 중국을 신뢰하지 않는 일본인 비율이 그 이전의 66% 수준으로 낮아지는 정도일 것이다.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각이 어떻게 바뀔지도 흥미롭다. 일본의 대북정책에는 별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재정부담으로 대북 지원이 줄어든다고 보면 북한 자체의 변화 리스크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