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멀쩡한 관용차 5년 되면 교체한다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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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운행하는 관용(官用) 차량에는 내구연한(耐久年限)이란 게 있다. 최소한의 사용 기간을 정해놓고 예산 낭비를 막자는 취지다. 내구연한 기준은 1976년 ‘관용차량 관리규정에 관한 대통령령’에 ‘차량의 신규 등록일로부터 5년간’이란 내용으로 처음 도입됐다. 현재 정부 부처와 지자체는 이 기준을 준용해 ‘5년 이상’ 또는 ‘주행거리 12만㎞ 이상’ 되면 관용차를 교체한다. 74년 첫 출시된 ‘포니’에 맞춰 정한 ‘내구연한 5년’이 무려 35년을 이어져 온 것이다. 개선된 성능을 감안하지 않은 채 멀쩡한 차를 바꾸는 데 세금을 펑펑 쓰는 셈이다. 정부도, 지자체도, 담당 공무원도 제 돈 아니라고 눈 감고 있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동안 낭비된 돈을 계산하면 직무유기(職務遺棄) 혐의로 고발당할 감이다.

 요즘 5년 된 차를 낡아서 못 탄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동차회사들은 판매 후 4~5년에 10만㎞ 안팎을 무상보증기간으로 잡고 있다. 고장 안 나고 탈 수 있다고 자동차회사가 자신하는 기간과 주행거리다. 그런데도 5년만 지나면 경쟁하듯 관용차를 새로 사는 게 관가의 관행처럼 굳어져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5년3개월 된 관용차를 에쿠스로 바꿨다. 김문수 경기도 지사는 3년 만에 관용차를 새로 구입했다. 돈이 없다며 모라토리엄(지불유예)까지 선언했던 이재명 경기도 성남시장은 5년4개월 된 관용차를 6000만원짜리 3200㏄급 체어맨으로 교체했다. 장·차관의 관용차를 비롯해 행정 부처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1765만 대다. 이 중 승용차·버스 등을 포함한 관용차는7만 대가량 된다. 이들 차량의 내구연한을 1년만 늘려도 예산 절감 효과는 금방 나타날 수 있다. 본청과 산하기관까지 합쳐 모두 1900대의 차량을 보유한 서울시의 경우 내구연한을 1년 연장하면 차량 교체 비용 등 연간 8억여원의 예산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시민에게는 허리띠를 졸라매자면서 정작 공직자들은 세금을 줄줄 흘리고 다닌다면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정부와 지자체는 시대에 맞게 관용차 내구연한을 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