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원칙 방송’ 스스로 문책한 MB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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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원칙과 공정성에 목말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태였다. MBC가 어제 ‘우리들의 일밤’ 프로그램의 화제 코너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를 담당하던 김영희 PD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징계를 내린 것이다. 예능국장에게도 지휘 책임을 물어 구두 경고를 했다. 우리는 MBC가 모처럼 잘못을 인정하고 자정(自淨) 기능을 발휘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기성 가수들의 노래 경쟁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는 지난 20일 방송에서 꼴찌를 한 김건모씨에게 당초 약속대로 탈락시키는 대신 재도전 기회를 줘 시청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쌀집 아저씨’로 통하는 김영희 PD는 ‘이경규가 간다’ ‘느낌표’ 같은 공익 프로그램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MBC 경영진도 교체에 앞서 임원회의를 세 차례나 여는 등 고심했다고 한다. 일부 동정론도 있고, 스타일이 제각각인 스타급 가수들을 경쟁시킨다는 기획 자체가 무리였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신속히 조치를 취한 것은 잘한 일이다. 누가 봐도 뻔한 잘못을 저질러 놓고 잘했다고 강변하거나 은근슬쩍 얼버무리는 행태를 그동안 수도 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였다. 프로그램이 다룬 주요 쟁점들이 법원에 의해 허위로 판명 났는데도 MBC는 여전히 잘했다는 투로 일관했다. 방송통신심의위의 명령을 받고서야 마지못해 사과 방송을 했고,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광우병 보도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보내기도 했다. 그뿐인가. ‘100분 토론’에서 시청자 의견을 멋대로 조작하다 들켰다. 지난달엔 ‘게임의 폭력성’을 입증한다며 PC방 컴퓨터 전원을 갑자기 꺼버리는 코미디 같은 ‘실험 보도’를 해놓고도 사과 한마디 없었다.

 MBC는 이번 일을 계기로 공영방송의 책무를 통감해야 한다. 예능뿐 아니라 보도·드라마에서도 게이트키핑(gatekeeping)과 자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철저히 점검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힘 없는 예능PD 한 명을 희생양 삼아 사태를 넘기려 한다는 비판만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