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외국인은 협회장 안 된다는 자동차공업협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김태진
경제부문 기자

한국자동차공업협회가 협회장 없이 두 달째 표류하고 있다. ‘외국인은 협회장을 할 수 없다’는 정관 때문이다. 이 정관은 2001년 현대·기아차 주도로 만들어졌다. 현대차는 1999년 기아차를 인수해 지금까지 내수시장의 75% 이상을 점유하며 협회 예산의 70% 이상을 대고 있다.

 자동차공업협회장 자리는 지금까지 현대차와 GM대우(현 한국GM), 기아차 순서로 대표이사급 인사가 2년씩 돌아가며 맡아 왔다. 이번에는 한국GM 차례지만 대표이사가 외국인이다. 현재 협회장은 임기를 마친 현대차 윤여철 부회장이 대행 중이다.

 문제는 지난달 신임 회장을 뽑는 정기총회를 준비하면서 협회 대주주 격인 현대·기아에서 반발하며 생겼다. 현대차 관계자는 “GM대우가 지난달 ‘대우’를 떼버리고 한국GM으로 사명을 바꾸며 미국 GM의 자회사가 됐으니 사실상 외국 회사”라며 ”이런 회사에서 자동차산업 발전을 담당할 협회장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핵심은 외국기업 기준과 외국인 협회장이다.

 현대차 관계자 말대로라면 협회에 등록된 국내 완성차 5개사 가운데 한국GM·르노삼성·쌍용차는 모두 외국기업(지분 기준)이다. 하지만 협회의 국산차 규정은 지분이 아니라 ‘국내에서 60% 이상 부가가치 창출한 차’로 정의한다. 역으로 현대차가 해외 공장에서 생산한 차를 수입하면 수입차가 되는 셈이다. 한국GM 관계자는 “협회 예산의 대부분을 대는 현대·기아가 외국인·외국회사는 협회장을 맡을 수 없다고 한다”며 “글로벌 기준을 무시한 협회 횡포가 계속되면 탈퇴도 검토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의견 조율이 안 돼 총회는 연기됐다. 이미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공업협회’로 이름을 바꾸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협회 관계자는 “지난달 행사가 많은 데다 협회장 인선에 대한 혼선으로 총회를 열지 못했다”며 “사실상 현대·기아가 협회 주인 노릇을 하는 상황에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16개 수입차 업체가 회원사인 수입차협회에도 ‘한국인 또는 외국인이 협회장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은 없다. 공직도 아닌 영리단체에서 외국인이라고 협회장을 할 수 없게 만든 정관이 필요할까. 22일 정기총회에서 협회의 글로벌 안목을 기대해 본다.

김태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