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운찬 ‘초과이익’만 다른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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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이익공유제-.

 처음 이를 사회에 제기했던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답답하다”고 했고, 주무부처인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더는 얘기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틀 전 경제정책의 사령탑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동반성장의) 취지는 살려야 한다”고 했다. 경제계의 거물들이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피아(彼我) 구분조차 쉽지 않다. 대체 무슨 복잡한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일까.

 정운찬 위원장은 16일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초과이익공유제의 의도가 왜곡돼 전달된 것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생산 과정을 노동과 자본뿐 아니라 협력업체로까지 이해한다면 초과이익이 난 것을 일부 협력업체에도 돌릴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강제적으로 하라든가 얼마를 꼭 하라든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장학금 기부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또 여러 차례에 걸쳐 “자율적”이라는 표현도 썼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16일 “취지에는 공감하나 애초 틀린 개념이고 현실에 적용할 수 없다”며 “(정 위원장이)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지식경제부 장관이 그런 발언을 하니 이 정부가 동반성장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고 불쾌해 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국회에서 “(정 위원장 발언의) 취지는 살려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초과이익공유제가 아니라 동반성장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재정부도 초과이익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공유할지라는 측면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대기업이 돈을 내놓아 협력업체의 기술개발 등을 돕는다는 큰 그림으로 볼 때 정 위원장의 구상은 기존 정부의 정책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이미 정부가 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9월 말 정부가 발표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에는 기술개발, 생산성 향상, 인력 양성, 해외마케팅 등 협력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목적으로 대기업의 투자재원 조성을 독려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는 지난해 말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대기업의 동반성장 투자에 대해 7%의 세액공제를 해주는 후속조치도 했다.

 정부와 차이점이 있다면 정 위원장이 재원 조달을 ‘초과이익의 분배’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어차피 대기업이 자율적으로 내는 돈이라면 굳이 개념 정의도 쉽지 않은 ‘초과이익’이라는 용어를 고집할 이유도 없다. 재원을 나눌 때 협력업체의 공헌도를 따져 나눌 수 있다는 주장도 정부 생각과는 다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대기업과 협력사 간의 합리적인 납품단가 결정 기준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기업과 협력사들의 다자 간 협력 성과인 초과이익에 대한 협력사별 기여도 평가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소모적이고 감정적인 논쟁을 하기보다는 부품·공정개선 등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원가절감분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기존의 성과공유제를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경호·임미진 기자

◆초과이익공유제=대기업이 거둔 초과이익을 협력업체와 자율적으로 나누자는 것으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제기했다. 이후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급진좌파적 주장”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경제학 책에 나오는 말도 아니고,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모르겠다”고 비판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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