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일본 원전 사태, 과민반응은 경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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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지진에 따른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가 갈수록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 1~4호기에서 잇따라 폭발이 일어났고, 내부 압력을 낮추기 위해 수증기를 방출하면서 주변 지역의 방사선량이 높아지고 있다. 5, 6호기에도 이상이 생겼다. 일본은 물론 인접 국가에까지 원전 공포를 부르기에 충분하다. 지금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일단 일본 정부는 이번 사태가 제2의 ‘체르노빌 사태’로 번질 가능성은 작다는 입장이다. 핵연료가 있는 노심은 압력용기-격납용기-원자로 건물의 세 겹으로 보호돼 있고, 지금까지 파손된 부분은 가장 바깥의 원자로 건물이란 것이다. 실제로 두께 1m 이상의 강철콘크리트로 만든 격납용기가 손상됐다는 공식 보고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내부 가스를 빼내면서 함께 포함된 방사성 물질이 일부 누출되고 있지만 심각한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지금 전 세계의 초점은 격납용기의 압력조절 장치가 손상된 것으로 알려진 2호기에 맞춰져 있다. 바닷물 공급이 끊겨 핵연료봉이 장시간 노출되는 바람에 노심용해(爐心溶解)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격납용기가 파손돼 핵물질이 외부로 흘러나오면 대재앙을 피할 수 없다. 일본 정부와 도쿄(東京)전력은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행히 냉각수 공급이 재개돼 원자로 내부의 수위는 높아졌다. 또한 외부에서 측정된 방사선량으로 미뤄 본격적인 노심용해가 일어났거나 격납용기까지 폭발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전 세계가 원전 건설 움직임에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국내에서 원전 반대 목소리가 고개를 드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우선 한국의 원자로와 구형(舊型)인 후쿠시마 원자로는 구조부터 다르다. 한국의 원자로는 열만 생산하고 증기는 다른 곳에서 생산해, 후쿠시마의 일체형 원전과 다르다. 또한 한국 원전은 규모 6.5~7.0 지진에 견디도록 설계됐으며, 대형 지진이 잦은 일본과 지질적 특성도 다르다. 현실적으로 원전 이외에 다른 대안도 없지 않은가. 태양열이나 풍력 발전은 경제성이 크게 떨어지고, 언제까지 화석 연료에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동일본 지진으로 원전의 안전신화가 크게 흔들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정부가 각별히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대목이다. 첫 폭발이 일어난 후쿠시마 1호기는 설계수명을 넘겨 10년간 추가 운영하다 사고를 냈다. 우리의 월성원전 1호기도 내년이면 30년의 설계수명을 채워, 정부에 계속 운전을 신청해둔 상태다. 국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려면 월성 1호기를 포함해 현재 운영 중인 원전 21기 모두에 대해 다시 한번 꼼꼼히 안전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로 원전 사고의 피해는 국경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한·중·일이 머리를 맞대고 동북아(東北亞)의 원자력 안전을 담보하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