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순익 46% 늘고도 수수료 인하엔 펄쩍 뛰는 카드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이익이 너무 많이 나서 전전긍긍하는 기업들이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신용카드사들이다.

 지난 10일 오후 카드사들의 모임인 여신금융협회는 ‘2010년 신용카드사 실적분석’ 자료를 발표했다. ‘보기보다 남는 게 없다’는 게 요지였다. 그날 오전 금융감독원이 “카드사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전년보다 46.1% 늘었다”고 발표하자 부랴부랴 해명에 나선 것이다.

 “카드업계 순이익이 급증한 건 일회성 영업이익 때문이고, 이를 제외하면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이란 주장이었다. 주식 처분으로 생긴 이익과 법인세 환급액, 배당금 수익을 빼면 실제 당기순이익 규모는 2조7243억원이 아니라 1조6988억원이라는 상세한 설명이 따라 붙었다. 감독당국은 “이익이 크게 늘었다”는데 업계에선 “그게 아니다”고 해명하는 보기 드문 상황이 펼쳐졌다.

 카드사들이 이렇게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번 실적 발표로 ‘돈 많이 벌었다’는 소문이 나면 자칫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라는 요구가 더 커질까 봐 걱정돼서다. 가뜩이나 요즘은 카드 수수료 문제로 민감한 시기다. 정유업계가 “기름값 인하를 위해 카드 수수료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오면서 카드업계와 한창 논쟁을 벌이고 있다.

 여신금융협회는 이 자료 말미에 “올해부터 카드사 수익이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하소연을 덧붙였다. 체크카드 수수료가 최대 1%포인트 떨어져 올해 수수료 수익이 최대 2000억원 줄어든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한 카드사 관계자는 “수수료 인하로 인해 체크카드 신상품의 경우 부가서비스 축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주장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각 카드사들은 이달 들어 부가서비스를 크게 늘린 상품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신용카드 포인트 적립률을 최고 5%로 높이는가 하면 체크카드에 붙는 각종 할인혜택을 추가하기도 했다. 상품성 높은 ‘대표 카드’를 출시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한편으로는 수익이 줄어든다고 아우성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마케팅비용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수수료 인하엔 업계 전체가 펄쩍 뛰면서도 정작 수익성을 갉아먹는 과열 경쟁을 멈추는 데는 아무도 관심 없어 보인다.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