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테마 읽기] 사과 … 미안하다는 말, 기꺼이 하는 이가 연봉 높은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쿨하게 사과하라
정재승·김호 지음
어크로스, 320쪽
1만4000원

사과(謝過)의 기술을 정리한 그렇고 그런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카이스트의 과학자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합심해 내놓은 ‘사과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다. 그만큼 넓고 깊다. ‘사과학’의 역사는 물론 2차대전의 영웅 패튼 장군부터 성희롱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우리 국회의원까지 동서양의 다양한 사례가 실려 넓다. 커뮤니케이션학·신경과학·경영학·의학 등의 탄탄한 이론과 사과문에 대한 시선분석(아이 트래킹) 연구가 동반됐기에 깊다.

핵심만 보자. 의미 있는 사과를 위해서는 ‘3R’이 필요하단다. 상대방에게 불편·고통·피해를 주어 미안하다는 유감(Regret), 윤리적· 법적 책임(Responsibility) 인정,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나아가 잘못을 보상하겠다는 치유(Remedy)가 그것이다. 또 “미안해, 하지만” “만약 ~했다면 사과할게” “실수가 있었습니다”란 표현은 3대 금기어라고 지적한다. 진정성이 결여된 ‘조건부 사과’로 가해자의 잘못은 애매하게 하는 대신 오해·협량(狹量) 등 피해자를 꼬집는 공격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다운계약서에)잘못된 점이 있었다면 사과 드린다” “답변하는 중에 예의 바르지 못한 점이 있었다면 용서해 달라”는 인사들이 성난 여론에 밀려 낙마까지 이른 것도 당연하다. 사과를 받는 이들은 미안하다고 말해주길 원하는 게 아니라 미안하다고 느끼길 원한다는 지적은 대부분 공감하지 않을까.

또 하나 새겨들을 것은 사과는 루저(loser)의 언어가 아니라 리더(leader)의 언어라는 주장이다. 사람들을 이끌려면 심리적으로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전문적 지식과 신뢰가 필요하다. 한데 진정한 리더라면 남이 지적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약점을 이야기해야 신뢰와 권위를 세울 수 있다고 한다. 또 통념과 달리 사과는 ‘비용’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독극물 타이레놀 사태에 신속하고 진정한 사과로, 오히려 신뢰도를 높인 미국 제약회사 존슨앤존슨 같은 경우만 말하는 게 아니다. 2007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의 “연봉을 올리고 싶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라”란 기사를 소개한다. 이에 따르면 억대 연봉자들이 연봉 3000만원 미만의 사람보다 “미안하다”고 사과할 의향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개인적으로도 유용하다는 뜻이겠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특히 이른바 공인(公人)은 형식적 사과에 그치는 경우가 많을까. 이와 관련해 실수나 잘못을 사과하기보다 핑계를 대거나 거짓말을 하는 ‘부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생존 가능성이 더 높고 성(性) 선택에서도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진화심리학 이론도 소개된다. 이처럼 책은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연재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인지 생생하고 흥미롭다. 크고 작은 잘못을 거듭하는 일반인은 물론 ‘진정한 리더’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줄 쳐가며 읽을 책이다.

김성희 객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