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과일행상 57세 지영복씨가 말하는 고유가 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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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지영복씨가 경기도 파주의 아파트 단지 앞에 트럭을 세워놓고 과일 행상을 하고 있다. [파주=김도훈 인턴기자]

2011년 봄, 중산층과 서민의 삶을 어렵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유가 상승이다. 중앙일보는 직장인(3월 1일자 4면)과 주부(3월 3일자 4면), 대학생(3월 8일자 12면)에 이어 1t 트럭을 몰며 과일 행상을 하는 지영복(57)씨를 통해 고유가 실태를 살펴봤다. 그는 “자고 나면 오르는 기름값에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지난 4일 만난 지씨는 두꺼운 솜바지를 입고 있었다. 기온이 영하 10도를 오르내려도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히터를 틀지 않아서다. 지씨는 “이 장사도 8년째라 웬만한 추위에는 끄떡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지난겨울 매서운 추위로 부르터 있었다.

 지씨는 매일 새벽 5시쯤 일어나 의정부에 있는 집을 나선다.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까지 25㎞를 운전해 그날 장사할 과일을 산다. 집으로 돌아와 잠깐 눈을 붙인 뒤 다시 30㎞를 달려 경기도 파주에서 과일을 팔고 있다. 매일 왕복 110㎞를 움직이는 셈이다.

 그런 그에게 요즘의 유가고는 한마디로 답이 없다. 1년 전, 경유값은 L당 1400원이었다. 지금은 L당 1670원이다. 요즘은 집 근처 주유소에서 시세보다 80원이나 싼 1590원짜리 저가 경유만 넣는다. “경유에 값싼 기름을 섞기 때문에 차가 빨리 망가진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대안이 없다. 5만원어치(31.25L)를 넣을 경우 일반 경유보다 3L 정도 더 들어가 20㎞를 더 달릴 수 있다.

 지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5만원어치씩 주유한다. 지난해 11월까지는 골목 구석구석을 돌며 장사를 했다. 지금은 골목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장사를 한다. 오후 5시쯤부턴 유동인구가 많은 읍내에 자리를 잡는다. 추위로 차 안에 있기 힘들어 근처 편의점이나 건물 계단에 들어가 있다가 손님이 오면 밖으로 나온다. 가끔 휴대용 가스난로를 쓰지만 하루 2000원 정도 드는 가스값도 부담스럽다.

 그렇게 아끼고도 매달 기름값으로 90만원 정도를 쓴다. 지난해 2월엔 60만원이면 충분했다. 기름값을 뺀 지씨의 지난달 순수입은 120만원. 한 달에 25일, 하루 17시간씩 일한 대가로는 너무 적은 돈이다. 지난해 새로 마련한 트럭 할부금과 밥값·월세를 내고 나면 적자다. 밑바닥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서 과일이 안 팔려 2년 동안 부은 연금보험을 해약했다. 하지만 리비아와 중동의 정정 불안과 물가 상승으로 고유가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지씨는 “정부는 서민 대책이랍시고 뭔가를 계속 발표하지만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글=이한길·정원엽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과일 행상’ 지영복씨의 2월 수입·지출

매출 : 210만원      
지출 : 207만5000원

경유비 - 90만원

자동차 할부금 - 34만8000원

식비 - 25만원

월세 - 20만원

차량 유지비 - 5만원

국민연금 - 6만7000원

보험 - 26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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