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재수사로 가는 ‘장자연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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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탤런트 장자연 자살 사건’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장씨가 썼다는 자필편지 사본이 공개되면서 2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의혹이 또다시 부상했다. 편지에는 장씨가 성(性) 접대를 강요당했다는 대기업과 금융기관, 방송사, 언론사 관계자 31명이 실명으로 거론되고, 분노와 수치심에 자살을 언급한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전 제기됐던 성 상납 의혹과 거의 똑같다. 장씨 사건을 철저히 수사했더라면 오늘의 혼란은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검찰과 경찰은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애초 장씨 사건 수사는 소리만 요란했지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은 채 덮었다는 인상을 주고 끝났다. 당시 경찰은 장씨 자살 후 4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된 언론사와 금융사 대표 등 20명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겼다. 검찰은 장씨의 전 소속사 대표 등 2명만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기소된 인물에게도 ‘접대 강요’는 제외한 채 폭행과 명예훼손 혐의만 적용됐다. 핵심의혹인 성 접대는 없었다는 결론인 셈이었다. 장씨가 성 상납을 하게 된 과정과 인물이 규명되지 않은 채 봉합(縫合)된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문제의 편지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장씨의 지인(知人)이 보관해 왔다고 한다. 2년 전 조사 당시에도 편지가 등장했지만 경찰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 지인이 정신병 치료를 받은 적이 있어 편지를 확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장씨와 편지 왕래가 있었는지 교도소 문서수발 기록만 뒤져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주 단순한 팩트(fact)도 확인하지 않은, 한마디로 부실수사다. 이러니 진실이 은폐·축소됐다는 등 갖가지 소문과 억측이 부풀어져 인터넷을 중심으로 떠돌아도 할 말이 없는 노릇이다.

 검찰과 경찰은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편지의 원본을 확보하고, 필적(筆跡) 감정을 통해 진위(眞僞)부터 가려야 한다. 나아가 기존에 나왔던 ‘유력 인사 성 접대 의혹’을 포함해 사건 실체를 규명하는 신속한 재수사가 불가피하다. ‘편지의 진실’은 지금 뭔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