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 스토리 6 그 때 그 시절의 주얼리, 그리고 201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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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를 켜면 성별과 세대를 막론하고 눈이 부시다 못해 때론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한 액세서리를 착용한 연예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불과 20여년 전인 1990년대 초반만 해도 TV 속 주얼리는 부를 상징했다. 대개 부잣집 며느리나 커리어우먼 같은,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어머니들의 보석함에는 예쁘고 화려한 액세서리 대신 노란 금붙이 같은 목걸이·팔찌만 들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땐 지금처럼 주얼리 스타일 운운하는 시대는 아니었다. 트렌드나 유행보다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따졌다. 보석의 사이즈, 화려함, 희소성에 중점을 뒀던 때다. 대체로 루비·사파이어·에메랄드 등 오버사이즈의 화려한 보석을 중심석(반지나 펜던트의 메인을 장식하는 보석)으로한 게 인기였다.

그러다 90년대 중반부터 저가 액세서리 브랜드들이 등장하며 주얼리에도 조금씩 유행이 생겼다. 소위 ‘연예인 B의 목걸이’라거나 “어디 브랜드 제품을 연예인 A가 착용했다더라” 등의 말이 퍼진 것이다. 이렇게 주얼리 유행은 입소문을 타고 대중에게 빠르게 퍼졌고 패션에 비해 유행이 더뎠던 주얼리에도 본격적인 트렌드가 생겼다.

당시 유행했던 아이템은 커플링, 발찌, 약지반지, 이니셜 목걸이, 캐릭터 펜던트 등이다. 그때는 고가의 보석보다는 중저가의 아이템이 유행했고, 핸드메이드가 아닌 대량생산 방식으로 바뀌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변화는 가속화됐다. 국제유가 상승, 국제 금 시세 상승 등 국제경제 시장의변화에 따라 주얼리 소비나 유행도 바뀐 시기다. 개성 있는 주얼리가 주목 받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은 현금 가치가 있는 금붙이나 고가의 주얼리보다 저가의 캐릭터 주얼리나 실버 액세서리에 더 흥미를 보였다. 주얼리가 부의 상징이 아닌 ‘주얼리’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패션 개념이 생긴 것이다.

판매자와 소비자들의 인식도 점차 바뀌었다. 무조건 고가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유행에 따라 가볍게 구입하고 유행이 바뀌면 다시 구매해도 된다는 인식으로 변한 것이다. 그만큼 대중도 주얼리를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5·6년 전부터 패션 아이템이 한층 실용적으로 변하면서 주얼리의 디자인과 소재도 다양해졌다. 여기에 TV·영화·인터넷이 발달되며 유행의 파급 효과도 극대화됐다. 한정됐던 브랜드나 가격대가 다양해졌고 구입할 수 있는 장소(예전엔 주얼리를 구입하기 위해 백화점을 주로 찾았다)도 늘었다.

그렇다면 올해 가장 이슈가 되는 주얼리 트렌드는 무엇일까? 지난해에 이어 레이어드 주얼리 스타일과 믹스&매치 스타일이 유행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30여 년 전 유행했던 오버사이즈 스톤과 클래식한 디자인이 만나 조화를 이룬 빈티지 클래식 디자인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반긴다. 한동안 가볍게 구입할 수 있는 패션 주얼리가 강세를 보이면서 장인의 전문적인 기술이 집약된, 주얼리 중의 주얼리 스타일을 보기 어려웠다. 이번 시즌에는 해외 명품브랜드는 물론 여기저기 다양한 브랜드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다시 클래식 주얼리가 재조명돼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기존의 주얼리 디자인 스타일을 탈피한 것들도 눈에 띈다. 여러 가지 컬러 스톤을 사용한 ‘판타지’ 주얼리, 유머나 위트를 주얼리 디자인에 담은 ‘플레이 풀’이 그것이다. 몽환적인 분위기나 팝아트 또는 그래픽적인 요소가 결합된 주얼리 스타일로, 이처럼 실험적인 형태의 주얼리 디자인이 속속 나올 예정이다.

디자인은 세월에 따라 다채롭게 변했다. 이러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어렵다. 단지 과거와 지금, 또한 앞으로도 본질은 변질되지 않았으면 한다.

좋은 소재에 섬세한 가공기술을 더하고 소비자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는 디자인을 끊임없이 연구한다면 굳이 유행을 따르지 않더라도 꾸준히 사랑받는 주얼리가 되지 않을까? 마치 영원한 보석 다이아 몬드처럼 말이다.

주얼리 디자이너 한영진=주얼리 브랜드 오르시아의 대표로, 2007 국제 귀금속 장신구대전에서 수상했다. 2008년 뉴욕 국제 주얼리 박람회 자문위원을 맡았고, 같은 해 지식경제부 주최 주얼리 디자인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09년 드라마 ‘천추태후’의 봉관 제작기술을 자문했으며, 여러 차례 TV 드라마와 영화 제작·협찬을 했다. 올 4월에는 제 21회 전국귀금속 디자인 공모전 특별상을 받았다.

[사진설명] 왼쪽부터 크리스찬 디올, 반클리프 앤 아펠, 오르시아1, 2, 쇼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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