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구곡에 취해 안동사람 다 된 사진가의 푸근한 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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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진가 이동춘씨가 기록한 ‘도산구곡’ 중 첫 번째 물굽이인 운암곡 주변 풍광.


이동춘(50·포토스퀘어 대표)씨는 경북 안동을 건넌방 드나들 듯 다니는 사진가다. 몇 년 전 어느 날 절밥이나 먹으러 가자는 지인을 따라 간 자리가 ‘도산구곡문화연대’ 발대식이 열리는 자리였고 그 뒤 도산구곡(陶山九曲)에 빠져 몇날 며칠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도산구곡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는 문화재와 종가(宗家), 그곳을 지키는 어르신들을 만나며 그 굽이굽이 얽힌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제는 외지인이라면 꼬장꼬장 낯을 가리는 종손들이 먼저 이씨를 찾을 지경이 됐다.

 『도산구곡 예던 길』(대가 펴냄)은 긴 세월 느릿느릿 차분차분 옛 선비들의 발길을 카메라로 좇은 이씨의 기록이다. 낙동강의 물굽이 아홉 군데를 구석구석 돌아들며 선인의 생애를 더듬은 시선이 넉넉하다. 퇴계 선생의 연시조 ‘도산십이곡’ 중 제9곡에 나온 ‘녀던 길’이란 말에서 책 제목을 따왔다. “옛사람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그분들을 뵙지 못했네. 옛사람을 뵙지 못해도 그분들이 걷던 길은 앞에 남아 있네. 그 길이 우리 앞에 있거늘 어찌 따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진집에 글을 붙인 이동수(61·안동문화원 부원장)씨는 “‘예던 길’은 선인들이 추구했던 진정한 삶의 길을 말한다”고 했다. 퇴계 선생의 15대손이며 치암고택의 주손인 이동수씨는 “글로는 다 보여줄 수 없는 도산구곡의 풍경과 문화유적을 더없이 좋은 사진으로 담아준 이동춘 작가에게 마음 깊이 고마움을 전한다”고 했다.

 이동춘 사진가는 “도산구곡이 바로 슬로시티이고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이라며 “이 마을 곳곳에서 다시 어린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고 선비문화를 지켜가는 이들의 삶이 언제까지나 고이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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