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金모(40)씨는 E마트에서 산 물오징어를 조리하다가 '덜 신선하다' 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바로 매장을 찾았고, 뜯은 물건인데도 불구하고 바로 새 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 E마트가 시행 중인 '품질 리콜제' 덕이었다.
한국후지제록스는 최근 한 대리점이 고객의 복사기를 고치면서 토너를 비(非)정품으로 넣었다가 혼쭐이 났다. 이 고객이 아예 'antifuji(후지를 반대한다는 뜻)' 란 이름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 이 사실을 공개해버린 것. 후지제록스는 급기야 회사 대표 명의로 자사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소비자 권익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스스로 권리찾기에 나서고 있으며, 제조.서비스.유통업체들도 이런 움직임에 긍정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이른바 '소비자 주권시대' 가 열리고 있는 것.
현재 국회 심의 중인 제조물책임(PL)법이 통과, 2001년 10월부터 시행되고 정부.소비자 단체가 추진 중인 집단소송제가 3~4년 내에 제도화되면 소비자들의 권익은 또 한번 획기적으로 향상될 전망이다.
◇ 리콜제 확산〓현대.기아자동차는 올들어 벌써 세차례씩이나 '자발적 리콜' 을 실시했다. 현대 관계자는 "예전엔 운행이나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됐을 때만 마지못해 했으나 이제는 급가속 때 배기가스가 많이 배출되는 게 확인돼도 리콜을 한다" 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가전제품에서 식품.의류.아파트 등에도 확산되고 있다.
완도 수협과 충북 사과원예협동조합 등 농축산물 단체들은 소비자가 불량 제품의 교환.반품을 요구할 경우 전량 응해주고 있다.
포시즌 콘도는 사용 후 마음에 안 들면 5년 뒤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리콜제를 제주 곽지 해수욕장 콘도에 적용했고, 넥타이 전문업체인 세우포리머는 디자인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환불해주겠다고 밝혔다.
물론 리콜제 등 새 제도 가운데 상당수는 시민단체의 요구에 마지 못해 응하거나 눈가림도 적지않아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예전에 비해 대응자세가 훨씬 달라진 것은 사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강해진 시민단체.네티즌 파워〓요즘 기업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소비자운동 시민단체들이다.
최근엔 소비자운동 대상이 보다 구체화되는 경향도 있다. 자동차 전문 시민단체인 '자동차 10년타기 시민운동연합' 이 한 예. 이 단체 대표인 임기상씨는 자동차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자동차 업체로부터 자발적 리콜을 수차례 유도했다. 또 연식별로 자동차세를 차등 부과하자는 자동차세 개정안을 입법 청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정부도 소비자단체의 역량을 인정해 이들과 공조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YMCA.주부클럽연합회 등 7개 민간단체를 공정거래 모니터로 활용, 불공정거래 감시기능을 분담키로 한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소비자 운동은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의류제조업체인 N사의 3억원짜리 도메인 공모에 의혹을 제기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지난 한달간 조회건수가 3만건이 넘었다. 이밖에도 '두루넷 서비스 개선을 원하는 모임' '이동전화 요금 인하 촉구 서명운동 사이트' 등 기업의 서비스 개선을 요구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이러한 반기업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선 "네티즌들이 익명성을 무기로 삼아 기업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는 반론도 많다.
◇ 확대되는 소비자 보호제도〓최근 오픈 프라이스제(판매업소가 상품 가격을 스스로 결정, 공시하는 제도)가 도입된 데 이어, PL법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또 소비자보호원은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단체로 소송을 걸 수 있게 하는 집단소송제 ▶피해를 야기한 사업자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물리는 징벌배상제를 3~5년 안에 단계적으로 도입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건국대 소비자 주거학과의 이승신 교수는 "최근 소비자 권리를 반드시 지키겠다는 프로의식이 부쩍 확산되고 있다" 며 "일부 부작용도 있을 수 있으나 이같은 능동적 소비자의 증가는 결국 기업 및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질 것" 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