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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바이러스, 아주 작은 작품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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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호 04면

1 아이 웨이웨이

런던의 테이트 모던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공간인 터바인 홀과 마주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그동안 유니레버의 지원을 받아 웅장한 공간감에 걸맞은 대규모 설치작품을 선보여 왔다. 루이즈 부르주아, 올라푸르 엘리아손, 아니시 카푸어, 레이철 화이트레드,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 등 저명 작가들의 스케일 큰 작품 덕분에 테이트 모던은 해가 갈수록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10년째를 맞은 유니레버 시리즈의 이번 작가는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건축가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54).

아이웨이웨이의 해바라기씨 조각들, 5월 2일까지 런던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

5월 2일까지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은 1억 개가 넘는 해바라기씨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방대한 터바인 홀 바닥에 깔린 해바라기씨가 마치 카펫처럼 보인다. 언뜻 보면 실제 같아 보이는 이 해바라기씨들은 사실은 도자기로 만들어졌다. 아이웨이웨이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도자기 제작은 매우 전통적이면서 고귀한 예술 형태로 간주돼 왔다. 나의 고민은 늘 전통적인 예술 제작 기법을 어떻게 현대미술 속으로 끌어와 새로운 시각 언어로 창조해낼 것인가에 있었다.”

2 작품이 설치된 터바인 홀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그는 전통적으로 도자기를 제작해 왔던 중국의 작은 마을 징더전(景德鎭)의 주민들을 고용했다. 해바라기씨들은 전통 제작 기법에 따라 틀에 넣어 모양이 만들어지고, 구워지고,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하나씩 채색함으로써 완성됐다. 그러므로 이들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하나 유일한 작품이다. 이렇게 제작된 해바라기씨들의 전체 무게는 무려 150t에 달했다. 배로 영국에 도착한 씨들은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 바닥에 깔렸다. 당초 아이웨이웨이의 의도는 관람객들이 그 위를 자유롭게 걸어다니고 씨들을 만져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수많은 씨에서 나오는 도자기 가루들이 폐에 해로울 수 있다는 영국 보건부의 분석 결과에 따라 해바라기씨들을 만지는 것은 전면 금지됐다. 중국 정부의 정책과 사회를 비판하는 작업으로 늘 검열의 칼날을 맞으면서 살아온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에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는 영국에서까지 접근 금지 조치가 행해졌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이 전시는 또 다른 이슈가 되었다.

3 작품 세부 사진

그럼, 아이웨이웨이는 왜 이렇게 수많은 해바라기씨를 만들게 되었을까. 작품 옆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상영되는 제작 과정 다큐 비디오에서 작가는 말한다. “옛 가난했던 시절, 중국 사람들에게 해바라기씨는 매우 요긴한 간식거리였다. 사람들의 주머니엔 늘 해바라기씨들이 있었다. 마오쩌둥은 한 움큼 해바라기씨를 들고 ‘나는 인민들의 해이며 인민들은 나를 바라보는 해바라기들’이라 하곤 했다.”

이 작품의 배경에는 전체와 개인의 관계가 늘 대립하고 충돌해 왔으며 다수의 개인이 전체의 이념을 위해 희생되었던 중국의 근현대사가 있다. 그리고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개인주의’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중국 현세대들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가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비단 중국에서 논의되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인터넷과 신기술들이 지배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실명과 익명으로 표류하는 수많은 ‘개인’과 전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작업이기도 하다. 숙련된 중국 도공들의 손에 의해 정교한 방법으로 제작된 이 작품들은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예술’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기도 한다.
아이웨이웨이는 늘 세상과 소통하기를 소망하는 작가다. 그래서 그의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세상을 향해 열려 있으며 늘 새로운 코멘트들이 포스팅된다. 그런 그는 중국 정부의 눈엣가시다. 2008년 쓰촨성 지진으로 희생된 어린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그 원인을 파헤치는 작업을 하던 중 그는 중국 경찰들에게 맞아 머리를 심하게 다쳐 긴급 수술을 받기도 했다. 예술가·철학자·지식인·기자들이 드나드는 그의 스튜디오는 늘 철거 협박에 시달린다.

이렇게 늘 행동하고 비판해왔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예술작품보다는 새 둥지 모양에서 영감을 얻은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을 디자인한 건축가로 세상에 더 잘 알려지게 됐다. 이제 보다 많은 사람이 그의 예술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술의 힘’을 믿는다.

“예술의 힘은 정신적인 힘이다. 이것은 작품의 물질적인 크기나, 작품 제작에 걸린 세월이나 그리고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얼마나 먼 거리를 여행했는지와는 무관하다. 대답은 작품이 어떻게 우리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느냐에 있다. 이성적인 사회에서 예술가는 바이러스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말이다. 아주 작은 예술작품이 전 세계를 바꿀 수 있고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이것은 이성적인 사회의 경계심을 유발하는 과정이다. 예술의 힘이란 이렇게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인식을 일깨워주는 것에 있다.”

그렇다. 예술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때로는 웅장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때로는 명상을 하는 듯한 부드럽고 조용한 웅성임으로 예술은 우리의 삶에 늘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나는 아이웨이웨이의 해바라기씨를 한 움큼 두 손으로 쥐어보고 싶은 충동을 누른다. 수많은 해바라기씨에 수많은 희망이 담겨 있었다.


최선희씨는 런던 크리스티 인스티튜트에서 서양 미술사 디플로마를 받았다. 파리에 살면서 아트 컨설턴트로 일한다.『런던 미술 수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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