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부동산 투기대책 1년 새 9개 쏟아낸 중국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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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주택 대출 비중을 줄이고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중국 산시(山西)성 타이위안(太原)시의 고층건물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타이위안 AP=뉴시스]

13일 오후 홍콩 카우룽 지구의 타이콕추이(大角嘴). 휴일인데도 부동산중개업체 직원들이 전단지를 돌리며 고객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센터라인 프라퍼티(中原地産)’ 직원 게리 창은 “선전에서 들어오는 고속철 공사가 본격화하면 집값이 두서너 번 뛸 테니 지금이 집을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때 잠시 꺾였던 이 지역의 민영 아파트 가격은 매달 3~4%씩 올랐다. 부동산중개업체 ‘미드랜드 리얼티’는 이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2008년 말에 비해 86% 폭등했다고 소개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홍콩섬의 노쓰포인트(北角)·타이쿠싱(太古城)의 주요 아파트 가격은 1997년 금융위기 때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가 최근에는 위기 전보다도 10% 올라 있다.

 홍콩 집값을 끌어올린 주도 세력은 본토의 중국인들이다. 바로 ‘바이(Buy) 홍콩’ 열풍이다. 홍콩의 대표적 부동산 개발업체 선홍카이(新鴻基)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섬 남부 람완(南灣) 일대 부동산 거래의 30%가 중국인에 의해 이뤄졌다. 지난해 상반기 홍콩의 신규 부동산(새 아파트·주택) 거래 총액 538억 홍콩달러 가운데 21%가 중국인과의 거래에서 발생했다. 중국 대륙과 인접한 신계와 카우룽 지역은 중국인들이 요즘 부동산 거래의 40%를 차지한다고 한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위안화 절상에 따라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홍콩 부동산으로 중국 자금이 계속 유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붙은 홍콩의 부동산 경기는 중국 대륙에 불고 있는 부동산 광풍의 일단에 불과하다. 부동산 열기는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1선도시(국가 중점도시)에서 항저우·충칭·싼야 등 동부연안·내륙 도시로 확산됐다. 평균 집값은 항저우가 2만5840위안(㎡당 440만원)으로 중국에서 가장 높다. 베이징·상하이가 그 뒤를 잇는다. 2001년 2170위안(37만원·㎡당)이었던 중국의 평균 집값은 지난해 4100위안을 넘어섰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70개 도시의 집값이 6.4%(전년도 12월 대비) 올랐다고 최근 발표했다. 11월 상승률 7.7%보다는 한풀 꺾였지만 중국의 부동산 가격은 지난해 12월까지 19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부동산 광풍은 중국 정부의 각종 대책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3주택 매입 때 대출규제 ▶은행 모기지 금리인상 ▶부동산 개발업체 대출제한 등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불붙은 투기 열풍을 잠재우긴 역부족이었다. 되레 중국 정부가 부동산 열풍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많다. 도시화 정책을 밀어붙여 개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JP모건은 “47%대에 머물고 있는 중국의 도시화율을 2020년까지 6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당국의 구상을 토대로 계산하면 매년 2억㎡(분당신도시의 약 10배)의 신규 주택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지방정부로부터 비싼 가격으로 토지를 넘겨받은 개발업자들은 원가 상승 부담을 집값에 옮겨 팔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금 이자로는 물가상승분조차 만회할 수 없는 시장 상황도 부동산 투자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1년 만기 저축예금 이자율은 3%로 물가상승률 6%의 절반밖에 안 된다. 자산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부동산 투자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한때 분양가를 낮췄던 완커(萬科) 등 중국의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다시 값을 올리고 있다.

 고심하는 중국 정부는 올해도 특단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26일 당국은 주택 구입자에 대한 대출 비중을 줄이고 과세 조치를 강화하는 등 신국8조(新國八條·국무원 부동산 조정 8대조치)를 발표했다. 28일부터 상하이·충칭의 아파트·주택 보유자는 매년 주택가격의 0.4~1.2%씩 세금을 내야 한다. 보유세 정책은 두 도시에서 시범실시한 뒤 효과가 있으면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달 들어 춘절 연휴가 끝나는 날, 당국은 부동산 시장에 영향이 큰 금리인상 카드를 또 꺼내 들었다. 지난 4개월 사이 세 번째 인상이었다. 금리와 세제·대출 등 전방위에서 부동산으로 들어가는 돈줄을 조이고 있는 것이다. 마크 오스트왈드 영국 마뉴먼트 증권 애널리스트는 “금리인상은 중국의 성장 속도를 늦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에선 추가 금리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HSBC은행 취홍빈(屈宏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6월까지 0.25%포인트 추가 금리인상과 1.5% 지준율 인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홍콩 명보는 9일 “고강도 대책이 연이어 나오면서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며 “후속 대책이 뒤따르면 부동산 과열은 진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컨설팅업체 DTZ 앨런 창 주거용 부동산 수석 연구원은 “구매 규제에 이어 금리인상까지 이어지면 시장은 빠르게 냉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 정도론 투기 열풍을 잡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만만찮다. 부동산업체 푸리띠찬(富力地産) 대표이사 천즈하오(陳志濠)는 “금리인상은 올해의 경제 기조가 될 것”이라며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활황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업체 루이안(瑞安)의 대표이사 윈앤창(尹焰强)은 “올해 세 차례 정도 금리를 올려 인상폭이 0.75% 포인트에 이를 것 같다”며 “거시 경제관리 측면에서 아파트 가격 상승폭은 둔화하겠지만 아파트 값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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