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압훈련 때 정신차리라고 때린 건데 … 억울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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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찰청은 14일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중앙경찰학교에서 후임을 구타하거나 가혹행위를 한 전·의경 342명에 대해 인권교육을 실시했다. 교육 중인 전·의경들이 음악수업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후회되는 점도 있지만 억울하기도 합니다.”

 14일 충북 충주의 중앙경찰학교 강의동. 후임에게 구타나 가혹 행위를 한 것으로 지목된 전·의경 342명이 ‘인권교육’을 받기 위해 모였다. 강의실에 들어서는 전·의경들은 취재진을 보고 “얼굴 나가면 사회생활하기 힘들다”며 카메라를 피했다. 기자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오후 1시30분. 백석대 법정경찰학부 김상균 교수의 강의가 시작됐다. 주제는 ‘피해자를 이해하는 인권’. 김 교수는 개구리 그림을 꺼내 들며 ‘장난 삼아 던진 돌이 개구리에게는 큰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우화를 인용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구타인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수 있지만 피해자가 어떤 감정을 느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의경들은 굳은 얼굴로 김 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강의가 끝난 뒤 이모 상경은 “후회하고 있고, 여기서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와닿는다”고 말했다. 주먹으로 후임의 머리를 때렸다는 이유로 교육을 받게 됐다는 그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때리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고 했다.

 하지만 남모 상경은 억울한 점이 많았다. 남 상경은 훈련기간에 물을 주지 않고 발로 후임의 정강이를 찼다는 이유 등으로 교육을 받게 됐다. 그는 “(경찰) 조사가 후임 입장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생각이 든다”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대비한 훈련기간 중 일주일에 두 번씩 훈련을 나갔는데 물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못 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구타에 대해서도 “돌을 던지면 방패로 막는 실전훈련 때였는데 (후임이) 막지도 못하고 멍하게 서 있어서 정신차리라고 그런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선임을 죄인 취급해 아쉽다”며 고개를 숙였다.

 경찰은 ‘인권교육’이 앞으로 전·의경 구타·가혹 행위를 줄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가해자로 지목된 상당수 전·의경이 억울함을 토로하는 상황에서 강의와 봉사활동이 대안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고,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자신의 행동을 타당화하는 구실만 더 찾게 된다”며 “일방적인 강의보다는 심리적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경찰은 최근 전입 6개월 이하의 전·의경 4581명으로부터 365건의 피해신고를 받아 이 중 360건을 실제 피해 사례로 확인했다. 전역한 15명 등을 제외하고 342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인권교육’은 지난 10일 시작됐으며 23일까지 2주간 진행된다.

 한편 경찰은 15일 전·의경 부모 등 민간인이 포함된 ‘전·의경 인권침해처리 심사위원회’를 열어 형사 고발을 포함한 징계 수위를 정하기로 했다.

충주=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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