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13억 인구 중국은 지금 창런 전쟁 중 … 세계 인플레 진앙지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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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열린 중국 저장성 하이닝(海寧)시 인력시장에서 기업 인사담당자가 ‘재봉공과 소파공, 설거지할 사람,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을 구한다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서 있다. 사진 뒤쪽에도 ‘직공 구함(招工·자오궁)’이라고 쓰인 팻말이 보인다. 춘절 연휴 이후 하이닝시의 민간 기업이 인력난에 시달리자 지방 정부는 10개 이상의 구직 박람회를 계획하고 있다. [하이닝 신화사=연합뉴스]


중국 설 춘절(春節)을 맞아 고향을 찾은 농민공(農民工). 이들을 놓고 중국 서부 연안 산업지대와 새로 개발을 추진하는 중·서부 지방이 쟁탈전에 돌입했다. 덩달아 이들의 몸값이 뛴다. 중국발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 있는 설 전후 중국 노동시장의 풍경, 설 특수를 겨냥한 마케팅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먼동이 트지 않은 8일 이른 아침, 중국 중부의 안후이(安徽)성 우후(蕪湖)시 난링(南陵)현. 농촌 마을인 이곳에서는 동부 연안의 최대 경제 중심 도시인 상하이(上海) 번호판을 단 버스들이 시동을 걸었다. 중국 최대 명절 춘절(중국의 설) 연휴를 고향에서 보낸 노동자들을 실어나르기 위해서다.

 여성 노동자 린(林)은 “회사가 버스를 집 문 앞까지 보내줘 직장에 복귀하기가 아주 편해졌다”고 말했다.

 상하이의 크고 작은 제조업체들은 이번 연휴에 400대의 버스를 안후이뿐 아니라 허난(河南)·후베이(湖北)·후난(湖南) 등에 출동시켰다. 춘절을 보낸 뒤 혹시라도 이탈할지도 모르는 노동자들을 안전하게 공장으로 모셔가기 위해서다.

 이번에 버스 2대를 대절했다는 상하이 완구공장 제디의 후추빈(胡秋濱) 사장은 “가장 많았을 때 1300명이던 노동자가 지금은 300명으로 급감했다”며 “주문은 계속 들어오는데 인력난은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농민공(농촌 출신의 임시노동자)을 동부 공업지대로 가장 많이 송출해온 중국 서부의 중심도시 충칭(重慶). 그러나 요즘 충칭의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충칭시 공무원들은 고향에 돌아온 농민공을 춘절 이후에도 계속 현지에 붙들어두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이들은 이번 연휴에 특수 임무를 띠고 특근을 했다. 기차역과 인력시장을 돌아다니며 ‘고향도 일하기 좋아졌고 수입도 적지 않다(家鄕工作好 收入也不少)’고 호소했다. 귀향 노동자 만류 작전을 대대적으로 벌인 것이다.

 충칭시 산하 노트북컴퓨터 기지 건설지휘부는 지난달 30일 ‘외지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께 드리는 위안 편지’를 발표했다. 이 글에서 충칭시 측은 달콤한 약속을 제시했다. 10만 개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일정한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또 공공임대아파트를 주고, 자녀 학교도 알선하겠다고 공약했다. 동부의 대도시로 떠나려는 노동자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다.

 중국의 노동자 부족 현상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이른바 ‘민공황(民工荒)’이다. 이 때문에 동부·중부·서부는 제한된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이를 사람 뺏기를 뜻하는 ‘창런(<6436>人) 현상’이라고 부른다.

 노동력 부족 현상은 2003년 이후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의 변화는 구조적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중서부의 농민공들은 일자리를 찾아 동부로 몰려가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제는 양상이 달라졌다. 중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중부 굴기(부상)와 서부 대개발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면서 이들 지역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부는 동부대로, 중서부는 중서부대로 노동자가 부족해졌다.

 실제로 중부 지역의 고속 성장을 이끄는 후베이성 우한(武漢)에선 무려 5000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일례로 대만계 푸스캉(富士康)은 광구(光谷·optic valley)로 불리는 첨단기술 공단에 수만 명을 고용할 공장을 짓고 있으나, 인력은 여기서도 태부족이다.

 충칭시도 올해부터 5년간 3조 위안의 국내총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조업에서 300만 개, 서비스 분야에서 200만 개의 일자리를 채워야 한다. 그런데도 노동력 공급은 적기에 충분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중국국가통계국에 따르면 농민공은 최근 3년간 2000만 명이 줄었다.

 동부와 중서부의 임금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기업들의 인력 확보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2009년의 경우 동부지역의 농민공 월 수입이 1455위안, 중부는 1389위안, 서부는 1382위안이었다. 5년 전에 동부와 서부의 격차가 15%였으나 최근에는 5%로 줄어들었다.

 급기야 지방정부들이 발벗고 나섰다.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시는 인력 송출 지역을 찾아가 농민공 조달에 나서고 있다. 저장성(浙江省) 샤오싱(紹興)시 정부와 기업들은 간쑤(甘肅)·광시(廣西)에서 노동자 모집 활동을 했다. 닝보(寧波)시는 농민공들에게 의료·양로 보험을 제공하는 당근책을 쓰고 있다.

 중서부 도시들도 맞대응을 하고 있다. 안후이성은 지역 주민들이 춘절 후 외지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현지 기업체와 연계해 관내 취업 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내놨다.

 노동자들의 몸값은 빠르게 치솟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전국적으로 최저임금을 28.8% 인상했다. 상하이는 최저임금이 1120위안까지 올랐다. 올해도 임금 인상 흐름은 가속화하고 있다. 베이징은 지난 1월 초부터 최저임금을 960위안에서 1160위안으로 20.8% 인상했다. 다른 지역도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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