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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한방 얻어맞고 휘청

중앙일보

입력

토머스 펜필드 잭슨 판사는 월 스트리트가 한 주의 장을 마감하는 지난주 금요일(5일)
오후 늦게 디지털 시대 최대의 독과점 소송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발표한다고 선언했다. 76일간의 치열한 법정싸움, 1백 명에 달하는 증인의 동원, 그리고 레이크 워싱턴에 있는 빌 게이츠의 초호화 맨션을 온통 도배할 만한 분량의 문건이 제출된 끝에 마침내 그날이 온 것이다.

잭슨은 법원의 ‘사실인정’을 발표했다. 그것은 5천억 달러 규모의 소프트웨어 업계 공룡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美 법무부가 제기한 소송의 최종판결을 향한 첫걸음이다. 워싱턴州 레드먼드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의 홍보팀을 비롯한 경영진은 ‘신속대응반’을 구성하고 기자들과 해당 홍보담당이 서로 연결되도록 조치했다.

한편 2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의 불공정 행위를 입증하기 위해 애써온 법무부 反독점 담당 책임자 조엘 클라인은 “아기의 출산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이라고 말했다. 클라인 팀은 판사가 자신들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도 마이크로소프트에도 ‘뼈다귀 몇 개는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창으로 머리를 찔러 꿰차는 승리란 거의 없다”고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그러나 잭슨 판사가 내놓은 2백7쪽에 달하는 방대한 판정문은 게이츠의 머리를 솜씨있게 증거의 창으로 꿰찬 모습이었다. 이번 사실인정은 내년 초로 예상되는 실제 판결의 서곡에 불과하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경쟁업체를 위협할 뿐 아니라 기술혁신을 가로막고 소비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독점업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잭슨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 점을 감안할 때 그의 후속 판결은 불문가지다. “빌 게이츠는 머리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잭슨 판사가 인정한 몇 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 여부는 전체 컴퓨터 시장이 아니라 인텔 호환 컴퓨터 시장만을 토대로 한다. 그런데 인텔 호환 컴퓨터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거의 독차지하고 있으므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점업체다. 더욱이 그 독점업체는 독자적으로 생존 가능하며 도전받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개발비 지출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고객의 이익을 위해 신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경쟁이 더욱 먼 장래에 대두하게 되도록 미루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판사의 시각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조치들은 소비자들에게 즉각적이고 현저한 손해를 끼쳤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을 억제함으로써 컴퓨터의 기술발전을 늦추고 가격을 높였으며 안정성을 저해하고 사용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모두 사용자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정부측을 가장 기쁘게 만든 것은 그의 마지막 주장이다. 많은 관측통들은 이번 소송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체제가 경쟁업체를 깔아뭉개는 과정이 파헤쳐졌다고 믿었다. 한편 컴퓨터 사용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조치로 피해를 입었다는 가설은 논리가 빈약했다. 그러나 잭슨은 윈도에 인터넷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통합한 것도 소비자들에게 별 득은 아니라고 판정했다. 시스템 속도를 느리게 하고 더 잦은 시스템 중단을 야기할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물론 미국 정부는 환호작약했다. 재닛 리노 법무장관은 “소비자들의 일대 승리”라며 기뻐했다. 금요일은 마이크로소프트를 미워하던 수많은 실리콘 밸리의 업체들에도 기념할 만한 날이 됐다. 넷스케이프의 前 최고경영자 짐 박스데일은 “그동안의 우리 주장이 옳다는 게 입증됐다”며 잭슨 판사의 이번 작품을 “10점 만점 중 11점”으로 평가했다. 사실인정을 확인하기도 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의 불법행위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마땅한 사법 처방은 ‘게이츠가 구축한 회사를 와해시키는 것’뿐이라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독점업체로 몰리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반응은 어땠을까. 재판대와 여론법정에서 연타를 당하면서도 줄곧 귀머거리 행세를 해온 마이크로소프트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행동했지만 연기력이 부족했다. 정부의 표적이 된 데 대해 사석에서 분통을 터뜨렸던 빌 게이츠는 애써 태연한 체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를 놓고 반 년마다 열리는 아이디어 회의에서 긴급히 돌아온 그는 회사의 도덕성에 대한 기본 입장을 재천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치열하고 공정하게 경쟁한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석 변호사 윌리엄 뉴컴의 논평이 더 설득력 있었다. 그는 이번 송사의 향배에 대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입장을 대변했다. 항소심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그를 당황케 한 것은 이제 잭슨 판사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다수의 사업부로 토막내는 ‘횟집 주방장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경쟁사들의 전망에 관한 질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잭슨의 사실인정은 그 유명한 스타 보고서와 비슷했다. 그것이 자극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정부측 변호사 데이비드 보이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증인들을 무수히 모욕하는 장면은 굳이 기술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케네스 스타의 편파적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사실인정문은 모든 행동이 나쁘게만 보이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구술된 글 같다. 재판중 마이크로소프트측 변호사들은 참고인들에게 정부가 유죄를 입증하는 전자우편이나 메모를 찾아낸 데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끊임없이 경고했다.

그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번 송사의 핵심적 사실이라고 간주하는 것, 다시 말해 ‘치열하고 공정하게 경쟁했다’는 점으로부터 판사의 생각을 돌릴 수 없는 사소한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잭슨 판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내세운 증인들은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난무하는 증언들 속에서 시종일관 정부측 주장에 더 점수를 준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 조지 워싱턴大의 법학교수 윌리엄 코바치치에 따르면 잭슨 판사는 “정부측 관점에서 사실인정의 요약판을 작성한 셈”이다.

잭슨 판사는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측 변호사들이 정당한 경쟁관행이라고 간주하는 행위도 불법으로 간주했다. 익스플로러 브라우저를 무료 배포하기로 한 결정이 과연 인터넷 경제논리에 따른 것이며 고객만족을 위한 것인가? 아니, 순전히 넷스케이프를 짓밟기 위함이라는 주장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일로 과연 어느 정도 타격받을 것인가. 그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잭슨이 조목조목 밝힌 설득력 있는 불공정행위에 대해 법정은 물론 여론법정에서도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측은 증인을 줄줄이 내세워 마이크로소프트의 갖가지 권력남용 혐의를 증언토록 함으로써 마이크로소프트가 억지로 애플사에 자사 브라우저를 설치토록 강요하고, 인텔에 소프트웨어 시장 진출을 포기토록 했으며,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에 자바 소프트웨어를 넘기도록 강요한, 마치 연쇄 강도범 같은 인상을 갖도록 했다.

그러나 그 사실인정문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두뇌들에 대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삐뚤어진 독점체제 유지를 위해 연줄을 동원하고 법률 테두리를 뛰어 넘는 음모집단으로 묘사한 것이 보다 설득력 있다. 잭슨 판사는 구체적 날짜와 기술문제에 대한 지식, 그리고 단순한 증언뿐만 아니라 전자우편 증거로 무장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목표 달성을 위해 협력사에 압력을 넣는 일련의 이야기를 엮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펄쩍 뛰며 그것을 부인했다. 사실인정에 대한 반론 제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어쨌든 그들은 시도할 것이다. 먼저 마이크로소프트측 증인들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구체적 해명도 없이 정부측 주장을 받아들인 잭슨 판사의 종합적 접근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인정할 수 없을 법한 몇몇 증거를 사실로 판정한 데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들은 판사의 결론이 명백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고 비판할 가능성이 크다.

항소의 성공 여부를 떠나 일단 마이크로소프트는 시간을 벌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뉴컴 변호사는 모든 현안에 대해 일일이 시비를 가리는 데 걸리는 시간을 따져봤다. 2003년이나 돼야 대법원에 그 문제가 상정되리라는 것이 그의 계산이다. 그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훨씬 전에 차기 대통령이 마이크로소프트 문제에 대해 좀더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인물로 현 反독점 담당 책임자 조엘 클라인을 교체할 가능성도 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조지 W. 부시는 지난 10월 애리조나州에서 첨단기술회사 중역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을 통해 “항상 소송보다 기술혁신의 편에 설 것”이라며 정부의 개입축소를 약속했다.

그러나 설령 마이크로소프트가 항소심에서 불공정 판결을 모면해 계속 막대한 수익과 기록적인 시가총액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해도 불리한 평결이 날 경우 그에 고무된 경쟁사들이 제각기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법률고문 마이클 모리스는 “그렇게 되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자 기대”라고 말했다. 소송제기 가능성이 있는 대표적 업체가 브라우저 전쟁의 제물이 된 넷스케이프를 인수한 AOL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속한 타결만이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런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협상 테이블에 나서려면 실제로 자신들의 힘을 제한하겠다는 양보를 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빌 로키어 캘리포니아州 검찰총장은 지난 1년간 “아주 초보적인 예비협상이 있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은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공포의 금요일’을 맛본 마이크로소프트로선 좀더 성의를 표할 것이다.

With Brad Stone in Silicon Valley and
Rich Thomas in Washington

Steven Levy, Jared Sandberg 기자
뉴스위크 한국판(http://nwk.joongang.co.kr) 제 404호 199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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