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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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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샤카 줄루(1787년께~1828년)는 남부 아프리카의 전설적인 정복자다. 그의 가정 생활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설은 아내들이 임신하면 모두 죽였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설은 그가 아내를 취하지 않았으며 평생 섹스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설은 두 개지만 설명은 하나다. 절대 권력을 추구한 샤카 줄루는 자식이 생겨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샤카 줄루는 “권력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다”는 말에 충실한 극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권력을 나누기 싫어도 나눠야 하는 게 정치다. 통치기에 권력을 나눌 뿐만 아니라 권력을 승계할 후계자라는 이름의 대안(代案)도 마련해야 한다. 권력도 생명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권 위기에 놓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2인자를 두지 않고 도전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했다. 대안을 용인하지 않는 그의 권력욕은 이집트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정치 공동체 전체를 생각한다면 싫어도 대안은 마련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권력자는 불안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로버트 그린이라는 작가는 『권력의 법칙 48가지』(1998년)에서 “주군(主君)보다 빛나지 말라”를 권력의 제1 법칙으로 내세웠다. 권력을 쟁취하려면 자신이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지만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권력자가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게 되면 권력의 획득은 물 건너 간다.

 국내 정치건 국제 정치건 정치는 ‘대안의 정치’다. 대안이 있느냐 없느냐, 대안의 질이 어떤가에 따라 정치의 성패가 결정된다. 자신의 영향권에 있는 나라들에 대해 미국은 대안이 있으면 움직였고, 대안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미국이 지금까지 무바라크 대통령의 독재와 부패를 용인했던 것은 대안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이 이집트 민주화를 지지하는 것도 무함마드 엘바라데이라는 대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하는 쿠데타를 고려했다가 실행하지 못한 것도 이 대통령을 대신한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안의 정치는 본질적으로 ‘불안의 정치’다. 왕정이나 독재체제에서는 군주·독재자가 불안하다. 민주정치에서는 국민이 불안하다. 유권자는 다음 대통령, 다음 집권당이 지금 대통령·집권당보다 더 잘할 수 있을지 어느 정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좋은 것은 ‘대안의 정치’를 제도화해 불안감을 최소화하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는 국내외적으로 불안한 ‘대안의 정치’가 놓여 있다. 우선 패권국 미국에 대해 중국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의 문제다. 미국과 중국이 엮어가는 ‘대안의 국제정치’는 세계를 불안하게 할 수 있다.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 또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이 제창한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춰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면서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의 외교정책은 결국 ‘미국을 불안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덩은 “100년간 이 기조를 유지하라”고 특별히 당부했으나 이 기조는 이미 깨지고 있다. 중국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패권 행보’를 본격화하게 되면 세계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국보다 더 빛나라’는 주문을 할 수 있다. 중국이 미국에 대한 세계의 불만을 털어내고 중국 패권이 가져올 불안감을 해소한다면 중국은 패권을 저절로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그린이 말하는 권력의 첫 번째 법칙과 달리, 국내 정치에서도 정당과 대권 후보가 할 일은 지금 여당, 지금 대통령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마음껏 뽐내는 것이다. 한국 정치의 화두가 성장에서 복지로 바뀌고 있는지를 두고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불안감을 해소하는 확실한 대안에 국민·유권자의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우리 내부에 대안이 서면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체의 대안이 되는 통일도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음은 당연하다.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