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차례상엔 술을 한 번만 올려요, 축문은 읽지 않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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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덕 성균관장

나무 위 까치가 먼 데서 찾아온 손님을 반기는 날. 떨어져 있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새해 복을 바라는 날. 손자의 재롱에 할머니 한숨이 잠자고, 할아버지 주름살이 펴지는 날. 한 해의 시작이라 마냥 기쁜 날, 설이다.

 그런데 설은 ‘삼가다’는 의미의 ‘섧다’에서 그 명칭이 유래한 날이기도 하다. 기쁘고 설레지만 경거망동은 하지 말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삼가는 몸가짐은 예를 다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새해 아침만이라도 두 가지는 제대로 하자.

 차례와 세배다. 설을 앞두고 유학의 본산인 성균관 최근덕 관장에게서 제대로 차례 지내는 법을 들었다. 최 관장은 “원칙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차례는 조상께 드리는 새해 인사다. 몸을 깨끗이 씻고, 새 옷을 입고 드리는 게 자손 된 도리다. 제사와 달리 술은 한 번만 올리고 축문은 읽지 않는다. 차례를 마친 뒤 음식을 온 가족이 나눠 먹는 음복(飮福)을 한다.

차례상 차림에 통일된 양식은 없지만, 몇 가지 규칙은 있다. 어동육서(漁東肉西·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 두동미서(頭東尾西·생선은 머리가 동쪽, 꼬리가 서쪽), 좌포우혜(左脯右醯·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 등이다. 상이 작다면 편의에 따라 적절히 위치를 조율하면 된다. 하지만 신위 앞에 떡국을 놓는건 잊지 말자. [중앙포토]

차례상에는 지방(紙榜)을 둔다. 지방은 조상을 대신해 붙이는 종이다. 병풍이나 판자 등에 붙여 놓고 차례를 드린다. 4대조까지 쓰는 것이 원칙이나 2대조인 할아버지·할머니, 아버지·어머니까지만 써도 무방하다. 지방은 조상 한 분마다 따라 써 붙이는 것이 원칙이지만 할아버지·할머니, 아버지·어머니를 한데 써도 된다.

 예전에는 ‘현(顯·돌아가신 분을 높이는 말)’으로 시작해 ‘신위(神位·돌아가신 조상을 상징하는 말)’로 끝나는 한문을 썼다. 아버지가 ‘○○군수’라는 직책이 있다면 ‘현고○○군수부군신위(顯考○○郡守府君神位)’라고 쓴다. ‘고(考)’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직위가 없다면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경우 본관과 성씨를 넣어 ‘현비부인김해김씨신위(顯<59A3>夫人金海金氏神位)’라고 쓰는 게 일반적이다. 돌아가신 조부모는 각각 ‘조고(祖考)’ ‘조비(祖<59A3>)’라고 한다. 하지만 굳이 한문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최 관장은 “요즘은 한글로 ‘할아버지 신위’ ‘할머니 신위’ 등으로 써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차례상은 가족들이 먹을 정도만 차린다. 차례상 차리는 양식은 옛 책에도 통일된 게 없다. 그러니 상차림을 두고 머리를 싸맬 필요는 없다. 단 몇 가지만 알아 두자. 보통 4~5열로 음식을 차리는데 북쪽부터 첫째 열이고 남쪽이 끝 열이다. 차례상을 바라보고 오른쪽이 동쪽, 왼쪽이 서쪽이다. 일단 상의 가장 북쪽에 신위를 둔다. 그 앞에 신위의 수대로 떡국과 수저를 놓는다. 기제사에서는 신위 앞에 밥과 국을 두지만 설날 만은 특별히 떡국을 둔다. 둘째 열에는 고기와 생선으로 만든 전·구이, 셋째 열에는 탕을 놓고 넷째에는 포·나물·김치·식혜를 둔다. 생선·젓갈·식혜·김치는 동쪽, 고기·포·나물은 서쪽에 둔다. 마지막 열에는 과일을 두는데 보통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오른쪽, 흰 과일은 왼쪽), 조율시이(棗栗枾梨·왼쪽부터 대추·밤·감·배의 순서)를 따른다. 음식에는 고춧가루·마늘 양념 등 향신료를 삼간다. 최 관장은 “상이 좁다면 규칙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적절히 맞춰 놓으라”고 했다.

 전통적인 차례 순서는 다음과 같다. 장자(손)가 주인(主人)으로 차례를 주도하고, 그 아내가 주부(主夫)로 이를 돕는다. 차례상 앞에 일가족이 모인 뒤 주인이 향을 태우고 술을 그릇에 따른 뒤 물러나 두 번 절한다. 그 다음 모두 함께 절을 한다. 남자는 두 번, 여자는 네 번 한다. 주부가 방금 끓인 떡국과 탕·전을 상에 올린다. 주인이 신위 앞 잔에 술을 붓고 두 번 절한다. 주부가 떡국에 숟가락을 꽂아 담그고 젓가락을 시접(匙<696A>·제사 지낼 때 수저를 담는 놋그릇)에 얹는다. 주부는 네 번 절하고 물러난다. 일가족이 잠시 공손히 서 있다 주부가 숟가락·젓가락을 빼 시접에 넣는다. 다시 남자는 두 번, 여자는 네 번 절하고 주인은 지방을 태운다. 그 뒤 상을 치우고 음식을 나눠 먹는다. 최 관장은 “여자는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가볍게 큰절을 하기에 네 번 했지만 오늘날에는 두 번 해도 관계없다”고 말했다.

 세배는 예를 갖춘 큰절로 한다. 여자의 경우 양손을 옆으로 짚는 건 평절, 양손을 이마에 붙이고 무릎 꿇어 절하는 게 큰절이다. 남자는 이마를 바닥을 짚은 손등에 붙여 얼마간 머무르는 게 큰절이다.

 남자는 왼손,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해 맞잡고 꿇어앉을 때 남자는 왼발이 앞쪽, 여자는 오른발이 앞쪽이 되게 발등을 포갠다. 남자는 손바닥과 팔꿈치가 땅에 닿고 여자는 닿지 않는다. 왼 무릎을 먼저 꿇으며 앉고, 일어설 때는 오른 무릎을 먼저 세운다는 것은 공통이다. 손을 벌리지 않고 모으며, 엉덩이를 들지 않는 것이 제대로 된 자세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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