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국어 홀대하는 교육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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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홍종선
고려대 교수·국어국문학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하면 그에 따라 교육의 체제나 내용에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므로 변화에 능동적이어야 함은 물론 현실과 미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으로 그 변화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요즈음 교육정책은 교육을 직접 담당하는 교과 교육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대로 수렴되지 않은 채 몇몇 정책 입안자들의 탁상공론에 가까운 안을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는 듯하다. 대학에서 국어를 연구·교육하며, 중등 국어 교육에도 관심이 있는 필자는 국어 교육과 관련해 최근의 정부 정책에 여러 면에서 우려를 갖는다.

 이번에 교과부는 2014년 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현행 수능 ‘언어’ 과목 명칭을 ‘국어’로 바꾸면서 A형과 B형의 두 가지 시험을 보이겠다고 한다.

개편의 핵심은, 이과생들을 위한 A형으로, 대학의 문과 계열 지원자를 위한 B형보다 쉽게 출제하여 이과생들이 ‘불필요하게 어려운 국어 시험’을 보는 부담을 줄이겠다고 하는 것이다. 우선,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도 문과·이과를 통합, 통섭하고자 하는 시대에 오히려 1970년대 방식의 문과·이과 구분 시험 제도를 만듦부터가 퇴행적이다.

또 이과 학생들의 국어 능력과 수준이 문과 학생들보다 낮아도 무방하다는 생각은 모어(母語) 교육을 책임진 교육당국이 할 수 있는 생각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국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국어기본법을 제정하지 않았는가? 교과부가 추진하는 수능 언어 개편안은 이 국어기본법을 사문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문제에 대해 국어 교육자들과 학계에서 여러 차례 시정을 건의했지만 교과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다른 문제 하나를 더 들어보자. 요즘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공통 교육과정을 새로이 수립하면서 우리말을 올바로 알고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문법’과,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해하는 ‘문학’을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배제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들이 배제된다면 국민 교육의 근간이 되는 온전한 국어 교육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비록 국민이 노예가 된다 하더라도 자기들의 국어만 유지하고 있다면 자기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국어는 다만 노예에서 벗어나게 하는 열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국민의 정신과 정서를 얼마나 고양시키는가도 바로 국어에 달려 있다.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가진 나라에는 그만한 언어와 그 언어를 잘 알고 사용하는 국민들이 있다. 우리가 경제만을 추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문화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려면 우리말 문화를 비롯한 자기 정체성의 고양에도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과부는 영어 교육 강화에만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국사’나 ‘국어’ 등 우리의 자부심을 인식하는 과목은 너무 등한히 하고 있다. 현재도 ‘문법’ 교육이 부실하여 가뜩이나 오류투성이의 말과 글이 쏟아져 국어 파괴를 우려하는데, ‘문법’ 영역을 퇴출시키고 올바른 국어생활이 이루어지겠는가. 국어 교양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국어 교육과정의 전면에서 사라지게 하고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기능 교육만으로 국어 교육을 하겠다고 함은 이미 실패한 서구 언어교육 모형이 아닌가.

지금 미국·영국 등 많은 나라는 이런 기능 중심의 자국어 교육 실패를 극복하려는 교육개혁을 하는데, 우리는 그들의 실패를 모방하는 것을 개혁으로 삼고 있다. 이 문제 역시 학계와 교육 현장에서 수없이 많은 시정을 건의해 왔으나 교육당국의 생각에는 별 진전이 없는 듯하다.

 물론 국제 경쟁이 치열한 현대에 영어 등 외국어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하지만 진정한 경쟁력은, 자기 인식의 투철함을 바탕으로 다양한 부문의 능력을 키우는 데에서 생긴다고 우리는 믿는다. 국민이 모어 사용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추고, 모어로 이루어진 문학을 통해 국어 교양이 풍부해질 때, 수준 높고 올바른 세계화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홍종선 고려대 교수·국어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