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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에서나 보던 축구, 현실로 만들어가는 조광래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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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광래 대표팀 감독의 ‘만화 축구’가 무르익고 있다. 만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았던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축구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다. 사진은 카타르에서 훈련을 지휘하고 있는 조광래 감독(위)과 대표팀 선수들(아래)을 그래픽 처리한 것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조광래 감독님의 축구는 만화축구 같다.”

 지난해 10월 12일, 이청용(볼턴)이 서울에서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이 끝난 뒤 한 말이다. 만화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움직임을 선수들에게 요구한다는 뜻이었다. 실제 경기에서는 조 감독의 주문이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뜻도 담고 있었다.

 ‘만화축구’란 말은 약간의 비아냥을 담은 채 부정적인 뜻으로 회자됐다.

 그런데 조광래식 ‘만화축구’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조금씩 긍정적인 뜻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축구대표팀은 재빨리 퍼즐을 맞췄다 허물고 다시 맞추는 듯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움직임으로 재미있고도 강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이란과의 8강전까지만 보면 조광래 감독의 전술은 효과적이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용래(수원)나 기성용(셀틱)이 볼을 잡으면 전방의 지동원(전남)과 구자철(제주)이 순간적으로 위치를 바꾸고 좌우 측면 미드필더인 박지성(맨유)과 이청용은 전방에서 X자로 교차한다. 한 선수가 공간을 비우면 다른 선수가 재빨리 그 공간을 채우는 방식이다. 수비진은 눈앞에서 공격수가 자주 바뀌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조 감독이 강조한 ‘스페인처럼 짧고 간결한 패스를 통해 주도권을 잡고 공간을 확장한다’는 개념도 기록으로 나타난다.

 바레인과의 아시안컵 첫 경기에서 한국은 321번의 패스를 시도했다. 바레인의 패스 시도는 145번이었다. 두 배가 넘는 패스로 한국은 바레인을 압도했다. 성공률 또한 79%로 매우 높았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한 스페인이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서 기록한 패스 성공률은 76%였다. 전방 압박 수비는 호주·이란과의 경기에서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한국과 이란의 아시안컵 8강 경기를 중계한 차범근 해설위원은 “대표팀의 조별예선 경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짧고 간결하고 빠른 패스가 팀에 녹아들었다. 선수들이 감독이 원하는 축구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의 ‘만화축구’가 완성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 감독은 “만화축구 하려면 아직 멀었다”며 손사래를 친다. 미드필더와 공격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수비가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

 아시안컵에서 조 감독은 이영표(알힐랄)-곽태휘(교토상가)-이정수(알사드)-차두리(셀틱)를 주전 수비수로 택했다. 이정수와 차두리는 경험·체력·기술 등 모든 면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선수들이다. 이영표도 잘 해주고 있지만 34세임을 감안할 때 ‘포스트 이영표’가 필요하다. 이정수의 파트너는 조 감독의 가장 큰 고민이다. ‘만화축구’의 완성 여부는 결국 수비에 달려 있다.

도하=김종력 기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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