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중국 주재원 ‘일본 6만 명 vs 한국 60만 명’이 뜻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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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택수
국제금융센터 이사장

올해 1월 초 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郎) 국가전략담당상과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외무상을 각각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국 경제가 어려운 환경을 용케도(?) 잘 극복하고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데 대해 궁금증이 많은 듯했다.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1년간 일본의 정계·관계·경제계의 많은 분과 직접 접촉해 보면서 한국 경제를 보는 그들의 인식이 과거와는 상당히 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당시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大前<7814>一)는 기술 면에서는 일본에 뒤지고 임금 면에서는 중국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한국이 아마도 중·일 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우려가 크다는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장래에 대한 비관론을 제기한 바 있다. 아마도 내외의 많은 전문가도 당시에는 이러한 비관론을 쉽게 비판하거나 부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 경제에 대해 비관론적 추측이 대세였던 상황에서 최근 10여 년간 예상과 달리 한국이 비교적 선전을 함에 따라 일본이 이번에는 오히려 한국을 괄목상대하게 된 것 같다. 경제에는 공급과 수요의 양 측면이 있는데, 공급 측면만을 생각하면 한국이 상대적으로 저임금의 중국과 첨단기술의 일본 사이에 끼여 주눅들지 않고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요 측면을 살펴보면 과거 10여 년간 다행스럽게도 한국에 매우 유리한 방향으로 세계경제의 구조적인 변화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90년대 이후 최근까지 세계경제는 공급보다는 상대적으로 수요가 부족한 상황이 만성적으로 지속돼 왔다. 또 세계적으로 저축잉여가 엄청나게 누적돼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수요 측면이 공급 측면보다 중요한 경제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이나 인도, 남미, 심지어 아프리카 일부 지역 등 신흥경제권에서 약 7000만 명이 매년 중산층에 새롭게 진입하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소비와 관련 투자 수요가 전 세계 수요 증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저소득층에서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계층이 신규 수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첨단 고가 제품이 주도하는 선진국 시장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장이 열리게 된 것이다.

 선진국 시장만을 바라보고 있는 일본과 달리 전 세계적으로 중산층 비중의 급속한 확대라는 수요 구조의 변화와, 이에 민감하고 신속하게 대처한 한국 기업의 발 빠른 대응이 공급 측면의 여전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여 년간 일본보다 우리 경제가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아 보인 결정적인 이유라고 본다.

 한 예로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 기업의 주재원 숫자가 6만 명 정도인 데 비해 우리 기업의 경우 60만 명이 넘는다. 우리는 신시장의 개척에 성공하면서 성장을 지속해 온 것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현재 20%를 밑돌고 있는 세계의 중산층 인구 비율이 앞으로 10년 내 40%에 달하게 될 것이라 한다. 상당 기간 선진국 중심의 수요 증가보다는 신흥경제권을 중심으로 새로이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소득계층의 소비성향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들의 소비패턴이나 소비 품목 등은 선진국의 그것과는 같지 않다. 시장의 소비구조가 다변화되면서 우리 경제에도 활로가 열릴 것이다. 향후 10년간 우리 경제의 장래를 낙관하는 이유다. 다만 새로이 중산층에 진입하는 소비계층이라면 설령 열대의 아프리카 소국이라도 소홀히 대응해서는 안 된다.

한택수 국제금융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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