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무상급식 주민투표 주저 말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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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호 02면

거지가 돈을 모으면 깡통에 멕기(めっき) 칠을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거지 전공은 동냥이다. 돈이 생기면 깡통을 버리는 게 아니라 깡통에 금박 입힐 생각만 한다는 얘기다. 사람이 기존 관념과 습관에서 벗어나기란 이처럼 어렵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원래 취지는 일할 능력을 개발하고 일자리를 알선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거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한번 복지 맛을 들이면 떼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복지병, 복지 함정이 공연히 생기는 거 아니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우리나라 복지가 충분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늘려야 한다. 양극화 문제가 해소되긴커녕 갈수록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중산층은 붕괴되고, 빈부 격차는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 국민들의 복지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건 그래서다. 지금 평등의 여지를 넓혀가지 않으면 공동체로서의 결속이 와해될 수도 있다.

문제는 마냥 복지를 늘릴 수 없다는 게 딜레마다. 올해는 단순한 한 해가 아니다. 21세기에 들어와 두 번째로 맞는 ‘새로운 10년’의 첫해란 의미를 갖는다. 2020년까지 선진국이 되지 못하면 우리에겐 더 이상 기회가 없다. 인구가 줄어드는 게 가장 큰 이유다. 2018년께부터다. 노인 비율이 14%가 넘는 고령화사회에 들어서는 것도 이 무렵이다. 일할 수 있는 젊은 세대는 줄고, 그들에게 기대어 사는 노인은 급격히 늘어난다. 활력이 떨어지는 사회에서 선진국은 기대 난망(難望) 아닐까. 인구가 줄고 고령사회가 되기 전에 선진국이 돼야 한다. 그렇다면 답은 자명하다. 성장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복지는 늘리되 성장 동력을 건드려선 안 되는 이유다. 그러려면 경제능력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의 복지가 맞다. 능력이 안 되는데 복지만 늘리면 선진국 꿈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복지, 맞춤형 복지가 ‘새로운 10년’에 해야 할 복지다.

하지만 불행히도 무상복지에 발동이 걸렸다. 야당과 진보 진영은 국민의 복지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는 걸 정확히 포착했다. 예전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진보 진영 후보가 무상 공약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때의 국민은 무상에 현혹되지 않았다. 노무현 후보도 반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논쟁이 일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상에 동의하는 국민이 상당수라는 방증이다. 야당이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 공약으로 재미 봤다고 주장하는 건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다.

나라가 나아갈 방향은 국민이 정하는 거다. 무상을 원하는 국민이 많으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 야당은 세입과 세출 구조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면 된다고 한다. 증세할 필요가 없다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복지는 일단 시작되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세금을 늘리든지, 국가가 빚을 더 지든지 할 수밖에 없는 건 상식이다. 세금으로 해결할 참이면 현재의 기성 세대가, 국가 채무를 늘리겠다면 다음 세대가 부담해야 한다.

차제에 국민 의사를 정확히 물어볼 필요가 있다. 국민이 진정으로 무상을 원하는지,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 때문에 지지 후보를 정했는지를. 그럼으로써 세금 더 내고 무상복지를 원하는지, 세금 더 내지 않고 지속가능한 복지를 원하는지를.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제안한 건 그래서 맞다. 무상급식이 시작되면 무상 시리즈가 시작된다는 그의 우려도 맞다. 무상급식이 시작되면 무상보육, 무상의료에 뒤이어 무상주거까지 따라오게 돼있다. 급속히 전개될 무상 시리즈를 차단하려면 이번에 국민 의사를 확인하는 게 맞다. 투표 결과 국민이 고세금-고복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쪽으로 방향을 틀면 된다. 그게 국민의 선택이기에. 하지만 오 시장은 제의만 해놓고 감감 무소식이다. 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이 때문에 철회할 거라는 소문이 나돈다. 한나라당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래선 안 된다. 한나라가 반대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주민투표를 실시하라. 무상 논쟁이 한창인 지금이 나라 운명을 결정할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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