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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쟁이 유씨’가 더 바빠진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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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진홍
논설위원

# 눈발이 세차게 날리던 지난 화요일 늦은 오후에 종종 걸음을 치며 대학로의 한 소극장을 찾았다. 유난히 쌀쌀한 영하의 날씨였음에도 극장 안은 아예 난방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림잡아 30~40명 남짓한 관객들이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가며 연극이 시작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단 한 명의 등장인물이 하얀 가운을 걸친 채 관객 앞에 섰다. 그의 정체는 뭘까. 의사? 과학자? 아니다. 죽은 이를 염해주는 ‘염쟁이’였다.

 # ‘염쟁이’라 하면 왠지 비하하는 느낌이 든다 해서 대개는 점잖게 장의사라고 부른다. 아니 요즘은 개인이 하는 장의사도 거의 없고 무슨 ‘상조’라 해서 기업화돼 있기 일쑤다. 그렇다고 염쟁이란 표현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삶과 죽음 사이의 끈끈한 정리(情理)로 보자면 오히려 그것이 더 마음에 다가온다. 게다가 그날의 연극 제목이 ‘염쟁이 유씨’니 어쩔 도리 없이 그대로 염쟁이라 말하는 것이 나을 듯싶다. ‘염(殮)’이란 죽은 이의 몸을 씻은 다음 수의(壽衣)를 입히고 염포(殮布)로 묶는 일을 말한다. ‘염습(殮襲)’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전적 정의보다도 죽은 이에 대해 마지막 가는 길에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예를 갖추는 일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 ‘염쟁이 유씨’가 공연되는 1시간 30분 동안 극장 안에 모인 사람들은 추위도 잊은 채 함께 웃고 울며 극에 몰입하고 때론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의 온기가 이내 난방 하나 되지 않은 극장을 덥히고 있었다. 내 앞 자리에는 연세 지긋한 노부부와 자식이 함께 앉아 있었다. 물론 젊은 연인들도 있었다. 이미 전국 각처에서 1200여 회나 무대에 올린 연극이라서 그런지 이전에 봤는데 다시 본다는 사람도 있었다. 죽음을 소재로 한 연극인데 거기엔 묘하게도 삶에 대한 진한 애정이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죽는 거 무서워들 말어. 잘 사는 게 더 어렵고 힘들어”라는 ‘염쟁이 유씨’의 말이 귓전을 때린 채 떠나갈 줄 몰랐다.

 # 그렇다. 죽는 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제대로 못 사는 게 더 무섭다. ‘염쟁이 유씨’는 삶의 피할 수 없는 매듭으로서의 죽음을 다룬 연극이지만 오히려 그 죽음을 통해서 삶의 진정성과 기본을 다시 생각하게 해줬다. 시쳇말로 “한 번 죽지, 두 번 죽느냐?”며 결기를 세울 때가 간혹 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세상 속에서 거의 날마다 죽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박혀 죽기도 하고, 믿고 사랑했던 이로부터 날아온 배신의 칼이 등에 꽂혀 죽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도 똑같이 누군가에게 비수를 던지고 칼을 꽂는다. 모두가 날이 서 있다. 스치면 인연이 아니라 스치면 베인다. 혹은 이래저래 칼날 같은 세상 속에서 묘기 부리듯 줄타기하다 떨어져 죽기도 하고 살 길인 줄 알고 찾아 들어간 곳이 사자 입인 경우도 허다하다. 겉은 멀쩡해서 걸어들 다니지만 속은 이미 싸늘하게 죽어 있기 다반사다. ‘산 송장’이란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곳곳에 깊게 상처 파인 시체들이 나뒹군다. 이래저래 염하는 일을 그만 두려던 ‘염쟁이 유씨’만 더 바쁘게 생겼다.

 # 특히 권력의 주변에서 얼쩡거리면 결국 몸은 난자당하기 일쑤다. 정치에서 금도(襟度)는 사라진 지 오래다. 서로 찌르고 난자하기를 밥먹듯 한다. 그거 못 하면 바보 취급당하고 그거 잘 하면 힘이 있다고 말하는 현실이다. 권력이 뭐고, 자리가 뭐기에 이 난리들인지 모르겠다. 뭐든 손에 잡히면 찌르고 본다. 그러다 결국 자기가 칼 맞는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하나 보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아니라 ‘여의도 잔혹사’ ‘삼청동 잔혹사’다. 그래도 이런꼴 저런꼴 다 봐주며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신들을 거둬 정성껏 염해 주길 마다하지 않는 것은 ‘염쟁이 유씨’ 같은 우리 국민들이다. 정말이지 겁나게 착한 국민이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