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이철호의 시시각각

북한 무연탄 수출이 수상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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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산더미처럼 쌓여 중국 단둥(丹東)으로 넘어가는 북한 무연탄 사진이 눈길을 끈다. 중국에 종속될지 모른다는 조바심을 부르기에 충분하다. 북한 광물자원의 잠재가치가 7000조원이란 발표까지 나와 초조감을 더한다. 여기까지가 일반인의 눈에 비치는 이미지다. 북한 경제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기(奇)현상이란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5·24 조치로 남북 경제협력은 사실상 중단됐다. 북의 대중(對中) 수출 급증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통계를 살펴보면 다른 품목들은 2~3년 전과 매한가지란 점이 눈에 띈다. 팔아먹을 게 별로 없다는 뜻이다. 유독 무연탄 수출만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 달 평균 1000만 달러를 밑돌던 무연탄 수출이 지난해 8월엔 7000만 달러를 넘었다. 9~11월에도 월평균 5000만 달러를 웃돈다.

 무연탄 수출은 북한이 달러를 버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다. 수출단가도 높아졌다. 3월엔 t당 52.2 달러였다가 11월엔 82.8 달러로 60%나 올랐다. 국제 석탄값 오름세에 따른 반사이익이다. 북한이 무연탄에 혈안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10년간 군복무를 마친 제대 군인까지 탄광에 집단배치했다가 상당수가 무단 이탈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문제는 북한 무연탄이 갖는 이중성이다. 전문가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목도 바로 여기다. 북한의 전력 사정은 매우 어렵다. 수력 발전 비중이 60%가 넘는데, 특히 겨울철이 문제다. 수풍댐 같은 대형 댐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물 표면이 얼어도 취수구가 워낙 수심 깊이 위치한 게 다행이다. 김일성 시대부터 얕은 산간계곡에 집중 건설한 소수력(小水力)발전소가 골치다.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가 지속되면 얼음이 얼어 발전을 할 수 없다. 북한은 겨울철에 무연탄을 때는 화력발전으로 그 공백을 메워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런 특수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미국의 중유(重油) 지원이 중단되자 2009년 8월 무연탄 수출을 전면 금지시키기도 했다. 최소한의 기반 시설을 돌리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3년 전 북한의 발전소를 현지 조사한 한국수력원자력 권창섭 차장은 이렇게 말한다. “북쪽에는 질 좋은 탄광이 많다. 그러나 전기가 없으면 무연탄을 못 캔다. 화물열차도 대부분 전철이어서 운반이 쉽지 않다. 전력이 부족하면 모든 게 악순환에 빠진다.”

 혹독한 추위 속에 북한의 무연탄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고일동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연구실장은 “전력 생산을 희생할 만큼 외화 사정이 나쁘다는 신호”라고 해석한다. 대북 제재가 예상 밖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방증(傍證)으로 풀이한다. 고 실장은 “외화 확보→사치재 수입→측근들에 선물→충성심 유도는 북한의 전통적 통치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외화 부족이 북한의 통치 체제를 흔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후계세습을 위해 외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평양의 환율도 수상한 조짐을 보인다. 화폐개혁 쇼크는 지난해 5~6월께 진정됐다. 달러당 900~1000원에 안정되던 환율이 연말에 다시 2000원까지 치솟았다. 외화 부족에 따른 시장원리가 작동한 것이다. 이상하기는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도 마찬가지다. 수출의 60%를 차지하는 무연탄을 유독 강조했다. 공동사설은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원료를 해결하고 자금도 확보하자”며 ‘4대 선행(先行) 부문’으로 석탄·전력·금속·철도를 꼽았다. 신년 사설이 석탄을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고난의 행군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겨울철 북한 무연탄의 수출 급증은 수수께끼다. 절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기현상이다. 새해 벽두의 평화공세 이면에도 심각한 경제난이 깔려 있을지 모를 일이다. 연평도 사태 이후 우리는 바다 건너 무도나 개머리 진지에만 정신이 팔렸다. 눈을 돌려 단둥으로 꼬리를 물고 건너가는 무연탄 규모에도 신경을 쓸 때가 됐다. 원래 진실은 뒤에 있는 법이다. 뒷모습은 절대 거짓말을 못한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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