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자동차보험 ‘가짜 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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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틴틴 여러분은 ‘나이롱 환자’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나이롱은 합성섬유인 ‘나일론’의 잘못된 표현인데 ‘가짜’나 ‘저급한 것’을 비유할 때 흔히 쓰입니다. 따라서 나이롱 환자라면 ‘가짜 환자’란 뜻이 됩니다. 꾀병 환자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나이롱 환자가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요. 아프지도 않은 사람이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보험금을 타내고, 보험금이 늘다 보니 보험사는 보험료를 더 올리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죠. 이제부터 나이롱 환자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조목조목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픈 곳도 없는 사람이 왜 쓸데없이 병원 신세를 질까요. 그런데 만약 아픈 곳이 없어도 병원에 누워있기만 하면 입원비와 함께 매일 돈도 나온다고 생각해 보죠. 일하기 싫고, 돈도 벌고 싶다면 최대한 오래 병원에 있으려고 할 것입니다. 이런 일은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몰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사고가 나서 차가 부서지거나 사람이 다치면 보험금이 지급됩니다. 이를 악용해 나이롱 환자들은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하고서도 목이나 허리가 많이 아픈 척 입원을 하고 보험사에 신고를 합니다. 보험사를 속이는 거죠. 보험사는 의심이 들어도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가려낼 방법이 마땅치 않아 처음에 계약했던 대로 보험금을 지급합니다. 나이롱 환자들은 이를 통해 부당 이득을 챙기는 거고요.

 웃기는 건 일부 병원이 이런 멀쩡한 사람을 입원시켜 주고, 심지어 가짜 진단서까지 발급한다는 것이죠. 병원도 나이롱 환자와 마찬가지로 보험사를 속여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아프지도 않은 환자가 마치 아픈 것처럼 각종 검사와 치료를 한다면 병원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물론 치료비는 보험사가 부담하게 되고요. 일부 부도덕한 병원은 이처럼 보험사를 속여 아픈 척하는 환자에게 과잉진료를 해서 부당한 이득을 챙깁니다. 사실상 사기나 다를 바 없지요.

 나이롱 환자만 문제되는 게 아니라 ‘나이롱 차 정비’도 심각합니다. 가벼운 접촉 사고로 자동차의 범퍼가 살짝 긁혔다고 해봅시다. 이런 경우는 긁힌 부분만 보수해도 무방할 겁니다. 그런데 수리하면서 차 주인이 요구하거나 정비업체가 부추겨 범퍼 전체가 망가진 것처럼 위장해 새것으로 바꾼다면 훨씬 비싼 수리비가 나옵니다. 이 같은 과잉정비로 인해 보험사는 더 많은 보험금을 필요 이상으로 지급하게 됩니다.

 과잉정비 문제는 지난해 들어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보험료가 할증되는 기준이 올랐거든요. 자동차보험은 1년 단위로 계약하는데 이 기간 동안 일정 금액 이상의 보험금이 지급되면 다음 계약 때 보험료가 오릅니다. 여기서 일정 금액을 보험료 할증기준이라고 합니다.

2009년까지는 할증기준이 50만원이었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이것이 최대 200만원으로 올랐습니다. 50만원일 때는 새것으로 갈지 않고 부분수리만 하던 것도 200만원이 되면서 통째로 갈아 끼우고 싶은 마음이 커진 것이죠. 예를 들어 사고로 범퍼에 살짝 흠집이 났는데 새것으로 갈면 150만원이 들고 칠만 한다면 10만원이 든다고 해 봐요. 50만원이 넘으면 보험료가 오르는 2009년 같은 경우 사람들은 칠만 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는 200만원까지는 보험료가 오르지 않으니 일부 차 소유주나 정비업자들이 새것으로 갈고자 할 거예요.

 정비소들의 난립도 과잉정비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2000년 3010개였던 정비업체는 2008년 4705개로 증가했습니다. 8년 사이에 56.3%가 증가한 셈이죠. 이 기간 동안 등록된 자동차 수는 1205만9276대에서 1679만4219대로 39.3%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정비업체 한 곳당 차량대수는 2000년 4006대에서 2008년 3569대로 줄었습니다. 이처럼 자동차 수는 얼마 안 느는데 정비업체는 난립하다 보니 정비업체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교통사고 차량을 확보하기 위해 사고 난 차량을 견인하는 사람에게 수리비의 15% 정도를 견인 사례비로 주는 등 불법 관행이 널리 퍼지게 됐습니다.

 견인 사례비도 과잉정비를 부추기는 요인입니다. 칠만 새로 하면 되는 부품을 통째로 바꾸거나 고장 나지 않은 부분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등의 확대·부당수리를 하면 수리비가 올라 보험사로부터 받는 돈도 많아집니다. 이를 통해 정비업체들은 견인 사례비를 빼고서도 이익을 남기게 되는 것이죠.

 나이롱 환자나 정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통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어요.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동안 이렇게 보험사를 속이고 부당하게 보험금을 수령한 사람은 5만4268명에 이릅니다. 지급된 보험금은 3305억원이나 되고요. 2008년에 비하면 적발인원은 32.2%, 금액은 29.7% 증가했습니다.

 특히 이런 문제가 자동차보험에서 심각합니다. 2009년 자동차보험에서 보험사가 비양심적인 사람에게 불필요하게 지급한 보험금은 2237억원에 이릅니다. 생명보험의 보장성보험(445억원), 손해보험의 장기보험(433억원)보다 월등히 많은 금액이죠. 이처럼 자동차보험에서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것은 주로 나이롱 환자 문제 때문입니다. 손해보험업계는 병원에 입원했다고 보험사에 알리고 실제로는 아픈 곳이 없어 치료를 받지 않고 병원 밖에 나가 있는 이른바 부재환자를 조사했습니다. 2008년 총 59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32명이 부재환자였습니다. 비율로는 10.7%에 이릅니다. 이를 기초로 추정하면 2008년 한 해만 부재환자로 인해 보험금이 낭비된 액수가 치료비로 298억원, 합의금으로 567억원에 이릅니다.

 ‘보험사기가 문제인 건 알겠는데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지’라고 여기는 틴틴 여러분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보험사는 보험 가입자들에게 보험료를 받고 사고가 났을 때 이 돈을 토대로 보험금을 지급합니다. 사고가 많다면 지급되는 보험금도 많아 보험료가 높아지고, 보험금이 적다면 보험료도 낮아질 거예요. 일부 비양심적인 사람이 다친 곳 없이 병원에 누워 있거나, 불필요한 정비를 통해 많은 보험금을 타간다면 지급되는 보험금이 늘어나 보험료도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들의 비양심으로 인해 선량한 다수의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피해를 보게 됩니다. 자, 이제 나이롱 환자나 차 정비가 우리 사회에 어떤 해악을 미치는지 이해되셨나요.

권희진 기자

대책은 없나요 올해부터 진료비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심사 … 부당 이득 막는대요

나이롱 환자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갈수록 심각해져 가자 이번엔 정부가 나섰습니다. 보건복지부·국토해양부·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경찰청·금융감독원 등 6개 부처는 지난해 12월 29일 ‘공정사회를 향한 자동차보험 개선대책’을 발표했어요. 우선 올해부터 자신의 차량을 수리할 때 수리비의 일정 부분을 내는 자기부담금이 기존 정액형에서 정률형으로 바뀝니다. 정액형에서는 수리비가 50만원이든 200만원이든 5만원만 내면 됐습니다. 하지만 정률형으로 바뀐 후부터는 자기부담금이 20%라면 수리비가 50만원이면 10만원, 200만원이면 40만원을 내야 합니다. 많이 수리할수록 많은 돈을 내야 하는 만큼 과잉정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올해부터는 자동차 주인이 보험금을 청구할 때 수리비용 관련 견적서를 보험사에 제출해야 합니다. 보험사가 사전에 수리비용을 가늠할 수 있는 제도와 관행이 미흡해 정비업체의 과잉수리가 만연하고 있는 데 따른 것입니다. 견적서 제출을 통해 수리내역이 투명하게 관리되면서 과잉수리나 보험금 과잉청구도 줄어들 전망입니다.

 나이롱 환자 근절 대책도 마련됐어요. 올해부터 자동차보험 진료비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심사합니다. 이를 통해 허위·과잉진료를 일삼는 나이롱 환자가 보험금을 부당하게 수령하는 일을 예방하게 됩니다.

경미한 부상을 당한 환자는 통원치료를 원칙으로 하고 이들이 일정기간 이상 입원할 경우 보험사가 점검하며 필요할 경우 입원 필요성을 해당 병원이 재판단하도록 요청할 수 있게 했습니다. 보험사가 부재환자를 상시 점검하는 것과 함께 민관 합동으로 병의원 점검을 정례화(연1회)하고, 점검 결과에 따라 과태료 등을 부과하는 방안도 마련됐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나이롱 환자가 많은 문제 병원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원이 보건복지부에 통보하고 현지조사도 하게 됩니다.

 보험사기를 방지하는 것과 동시에 선량한 운전자에 대해서는 혜택을 늘렸습니다. 현재는 12년 동안 자동차 사고를 내지 않으면 보험료의 최고 60%를 할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 사람이 무사고를 계속 유지하면 6년에 걸쳐 추가로 10%를 할인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제도를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험사기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선진화된 시민의식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나이롱 환자나 과잉정비 문제는 일반 시민들의 미성숙한 시민의식도 한 원인이기 때문이죠. 할증기준을 넘지 않으면 보험료가 오르지 않으니 기왕이면 고치기보다는 새것으로 바꾸려고 하고, 다치지 않았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갖 검사와 진료를 받습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를 범죄로 생각하기보다는 남들도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마치 손해를 보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행동은 잘못된 것이며, 다수의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도덕적 해이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홍보와 교육을 통해 그릇된 인식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원·보험협회 등은 보험범죄 예방을 위한 인터넷 홍보활동 및 각종 인식 개선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관련 만화를 발간해 어린이들이 도덕적 해이 등 보험범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책임 있는 시민으로 자라나도록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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