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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조영남 … 돌고 돌아 다시 노래로 예순여섯 재미난 청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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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예술은 어정쩡한 가운데에 있지 않다. 세계의 온갖 극단으로 달려가 문화의 장벽을 깨부순다. 이 남자의 삶이 딱 그렇다. 조영남(66). 그의 시작은 노래였지만, 노래에만 머물지 않았다. 신의 뜻을 깨치겠다며 신학으로 달려갔고, 훗날엔 꽤 근사한 화가가 됐다. 언젠가는 촘촘한 문학 해설서(『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한길사))를 펴내 세간을 놀래키기도 했다.

사람들은 때로 그의 모호한 직업 정체성을 문제 삼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전위적 삶을 떠올릴 때, 그에게 달아줄 명찰은 단 하나뿐이다. 예술가. 좌우전후 극단에서 예술의 영토를 넓혀온 그는, 그래, 우리 문화를 살찌운 예술가다. 그 스스로는 ‘재미스트’라 부른다.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는 게 신념”이기 때문이란다. 그에게 재미란, 세상을 비뚤게 보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고 보면, 예술과 재미는 한 통속인 듯도 싶다.

그가 이번에 택한 ‘재미’는 다시 노래다. 지난해 말 ‘남자 조영남 노래 그리고 인생’이란 음반을 발표했다. 신곡만 12곡이 담긴 정규 앨범을 낸 건 데뷔 40년 만에 처음이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걸까. 예술의 미로를 돌고 돌아 다시금 노래로 돌아온 까닭은 뭘까.

글=정강현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런 물음부터 던져본다. 조영남은 ‘인기’ 가수일까. 모르겠다. 그의 히트곡을 꼽으라면, ‘화개장터’라 답하고선 딱히 덧붙일 말이 없다. 하긴 데뷔(1970년) 때부터 “노래 실력만 좋으면 된다”는 신념으로 살았던 그다. 해서 신곡보다 외국곡을 번안해 부르는 일을 즐겼다. 그렇게 내리 40년을 활동했다. 내세울 만한 히트곡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그런데도 대중은 여전히 ‘가수’조영남을 찾는다. 왜일까. 최근 내놓은 정규 앨범 ‘남자 조영남 노래 그리고 인생’에 해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인생 최후의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던 그 앨범이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신곡 12곡으로만 꾸민 앨범에서 그는 40년간 다져온 농익은 가창력을 선보였다.

한국 가요사에 남을 콜라보레이션

이번 앨범이 기획된 건 9년 전이다. 음반 제작자인 친구 이상렬씨가 “네 목소리를 담아두고 싶다”며 제안했다. ‘히트곡 메이커’ 김희갑(작곡)-양인자(작사) 부부가 모든 곡을 쓰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6년 앨범이 완성됐다. 하지만 그는 발표를 망설였다. “어차피 제작비도 건지기 힘들 텐데….”

-앨범 발표를 미룬 이유는.

“제 노래가 팔리기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죠. 저는 이미 옛날 가수이고 김희갑-양인자가 아니라 베토벤이 곡을 써줘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반응이 오지 않을 게 뻔한데 선뜻 시장에 내놓자고 하기가 망설여졌죠.”

-김희갑-양인자 부부는 무수한 히트곡을 쓴 명콤비인데요.

“물론이죠. 하지만 노래를 불러보니 사실 대중이 따라 부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고급스러운 곡들이었어요. 제가 평생 그런 (비대중적인) 노래를 부르다가 실패했잖아요.”

-왜 다시 앨범을 내기로 결심했나요.

“다시는 그런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겠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제가 올해 벌써 예순여섯이잖아요. 2006년에 녹음을 마쳤을 때의 목소리가 지금은 나오기 힘들어요. 결과적으론 제 노래의 최대치가 담겨 있는 앨범이 된 거죠. 제 인생 최후의 앨범이라는 생각에서 앨범을 내놓기로 결심한 겁니다.”

-앨범에 대해선 만족하는지.

“대만족이에요. 완성도 면에선 앞으로 10년 이내에 이런 앨범을 만나기 힘들 거라고 자부합니다. 김희갑ㆍ양인자ㆍ조영남이 함께 작업한 건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한국 가요사에 남을 만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히트곡 없어도 가창력만 있다면…”

히트곡과는 인연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화개장터’를 제외하곤 대중의 귀에 익은 곡을 꼽기가 어렵다. 그렇게 40년이 흘러 처음으로 신곡만을 담은 앨범이 나온 셈이다. 그는 “이번에도 히트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수로서 히트곡 욕심을 내는 건 당연한 일일 텐데요.

“가수로 살면서 신곡 앨범에 크게 집착하진 않았어요. 외국 가수들을 보니까 히트곡이 없어도 노래만 잘하면 오래도록 가수 생활을 하더라고요. 저도 노래 하나는 자신 있었으니까 가수로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거라 생각했죠.”

-아깝게 놓친 히트곡은 없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에요. 그 곡을 쓴 작곡가가 제 서울대 음대 후배에요. 저한테 곡을 주겠다고 했는데 제가 대답을 얼버무리고 말았어요. 그 노래가 나중에 그렇게 히트할 줄 몰랐죠. 하하.”

“나는 위악적인 자유인”

그는 우리 대중문화계에서 보기 드문 자유인이다. 장르를 파괴하고 영역을 뒤엎으며 한국 문화계를 가로질러왔다. 음악ㆍ미술ㆍ문학계에선 물론 방송 진행자로서도 두루 인정받았다. 지난해 12월 30일 ‘MBC 연기대상’에선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고, 8일부터는 KBS-2TV ‘명작스캔들(매주 토요일 밤 10시10분)’의 진행을 맡았다.

-하고 싶은 건 해내고야 마는 보기 드문 예술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면 좀 복잡한 생각이 들 거라 생각해요. ‘조영남이 가수인가 작가인가 화가인가 방송인인가…’. 그렇게 자유롭게 보이는 게 실은 위악적인 것일 수 있어요. 숨어 있는 진짜 조영남을 찾아내기가 힘들죠.”

-지난해엔 뇌출혈로 입원하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는 걸 체감하나요.

“뇌출혈로 입원했을 때 오히려 담담했어요. 하고 싶은 걸 다 했으니 이젠 손을 터는 듯한 느낌이랄까. 나이를 크게 고려하진 않아요.”

-각 분야에서 모두 정상에 올랐다고 볼 순 없는데도 대중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꼭 1등이 아니더라도 나 같은 3~4등짜리를 지지해주는 사람도 많다는 뜻 아닐까요.”

글=정강현 기자 사진=신나라 제공

[시시콜콜] ‘화개장터’ 숨은 이야기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던 그 곳, 중앙일보 작은 기사에 꽂혀 만들었죠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으로 시작하는 ‘화개장터’는 1988년에 발표돼 영ㆍ호남의 화합을 상징하는 곡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대중들 사이에선 화제였지만, 실은 다소 엉뚱하게 탄생한 곡이었다. 때는 조영남이 첫 번째 이혼을 겪은 직후였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빈털터리로 빈둥대던” 그 시절, 그는 서울 옥수동의 월세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1987년 미국에서 기자로 일하던 친구 김한길(전 국회의원)이 귀국했다.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았던 김한길은 조영남의 단칸방에서 함께 생활했다. 둘이 방에서 빈둥대던 중 우연히 신문기사 한 조각을 발견했다. 조영남의 증언이다.

“중앙일보 기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사회면에 작은 박스 기사였는데 화개장터를 다룬 내용이었다. 그때까지 화개장터란 곳을 가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었던 나는 전라도와 경상도에 걸쳐 있다는 그 장터가 몹시 흥미로웠다.”

내친김에 둘은 곡을 쓰기로 했다. 글깨나 쓰는 김한길(※훗날 ‘여자의 남자’로 베스트셀러 작가에도 올랐다)이 작사를 했고, 조영남이 곡을 붙였다. 조영남은 “막상 만들고 보니 가사가 너무 유치해서 부르기가 민망했다. 마치 행진곡처럼 들렸다”고 했다. 실제 여러 곡을 모아 앨범을 내면서 ‘화개장터’는 맨 마지막 트랙에다 슬쩍 넣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20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도 즐겨 불리는 애창곡이 됐다. ‘화개장터’와 관련한 또 하나의 비화 한 토막. 실제론 김한길 작사, 조영남 작곡이 맞지만 현재 모든 저작권료는 조영남에게 지급된다. 발표 당시엔 저작권 개념이 불명확해 조영남 작사ㆍ작곡으로 등록됐기 때문이다. 조영남은 “다행히 한길이와 재판 같은 건 없었다”며 웃었다.

정강현 기자

조영남

출생: 1945년 4월 2일 황해도 남천 출생

학력: 서울대 성악과 중퇴,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 졸업

데뷔: 1970년 ‘딜라일라’

주요 경력:

-1991년 뉴욕 카네기홀 메인홀 리사이틀

-1994년 HAENAH-KENT 갤러리 초대전(뉴욕)

-1996년 한국방송대상 가수상

-1997년 한국화랑미술제 이목화랑 초대전

-2007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신인상

-2010년 정규 앨범 ‘남자 조영남 노래 그리고 인생’ 발매

-2010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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