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금융위원장 “금융위 존재감만으로 시장 기강 잡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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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

 7년 전 이 말 한마디로 그는 ‘관치의 화신’이 됐다. 3년 만에 공직에 복귀한 김석동(사진) 금융위원장은 그 때와 같았다. 그의 일성은 ‘질서와 기강’이었다. 3일 취임사에서 그는 “금융위원회의 존재감만으로 시장의 질서와 기강이 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금융산업의 자율을 존중하겠지만 시장 자율은 질서와 규율이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내용의 98%는 여러분이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를 잘 알고 있지 않느냐’는 반문인 셈이다. 그는 “상황을 신속히 장악하고 핵심에 집중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자기 책임에 따라 과감한 결단도 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책임은 위원장인 자신이 지겠다고 했다.

 그는 이날 취임사에서 “많은 과제가 압축파일처럼 쌓여 있다”고 말했다. 가계대출의 안정적 관리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신속한 정리, 금융산업의 경쟁력 확충 등이 그가 꼽은 해결 과제였다. 대통령의 관심 사항인 서민금융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학철지부(涸轍之鮒)’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물 마른 수레바퀴 자국에 있는 붕어에겐 강물보다(근본 처방) 물 한 바가지(긴급 대책)가 더 급하다는 의미다. 그는 “서민에게 미소금융과 햇살론은 물 한 바가지처럼 소중하다”고 말했다. 긴급 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그의 전공이다. 서민금융 쪽에선 벌써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취임식 후엔 현안 얘기도 했다. 현대건설 매각은 “채권단(주주협의회)이 해당 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할 일”이라며 “중요한 것은 채권단이 책임 있게 행동하고 신뢰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는 “돈도 많이 받아야겠지만 우리금융이 잘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영화를 올해 끝낼 것이냐는 질문엔 “방법이 정해지면 시기는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슬쩍 피해갔다. 정권 임기 내 해결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관련해선 “도망가지 않겠다. 납득할 만한 방향으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복귀는 화려했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은 별로다. 김 위원장은 취임사 도중 몇 차례 금융위 대신 ‘금감위(금융감독위원회)’라는 말을 썼다. 그는 금융감독위원장이 금융감독원장을 겸임하던 시절 금감위 부위원장 등 요직을 거쳤다. 그러나 지금은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은 분리돼 있다. 금융위원장이 금감원을 지휘 감독하지만, 예전의 금감위원장처럼 직접 금감원 조직을 장악하긴 어렵다.

 금감원 노동조합은 이날 금융위원장 인사와 관련한 성명을 내고 “현 정부의 임기 말 경기 부양을 위해 금융정책이 악용돼서는 안 된다”며 “금융회사 인사에 개입하고 시장을 무시하면서 금융 선진화와 따뜻한 금융을 외치지 말라”고 주장했다. 그가 현 정부 초기 중용되지 못한 것은 ‘노무현 정부에서 잘나간 사람’이란 꼬리표 때문이었다. 복권됐다고는 하지만 임명권자가 그를 얼마나 신뢰하는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그가 질서를 잡겠다는 시장엔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금융회사 회장도 많다. 분리돼 반쪽이 된 감독 조직으로 거물급 금융회사 수장 사이에서 김 위원장이 제대로 뜻을 펼칠 수 있을까. 그의 능력과 리더십이 답해줄 것이다.

글=김원배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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