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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연구실서 자주 밤새워 … 공대 위기는 과장됐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4시 고려대 창의관 621호‘지식경제부 고효율 실리콘 태양전지 원천기술 연구센터’에서 신소재공학과 태양전지 연구실 연구원들이 방진복을 입고 태양전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고려대 신소재 공학과 태양전지 연구실 강민구(29) 연구원은 매일 오전 9시 연구소로 출근해 오후 11시 퇴근한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 2004년부터 석사·박사 통합과정에 있는 그는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퇴근시간은 없다. 새벽 1시도 2시도 좋다. 내 경우엔 11시에 차가 끊기기 때문에 보통 그때 퇴근한다”고 말했다.

과학고를 졸업하고 2000년 고려대 신소재 공학과에 입학한 강씨는 “고등학교 동창이 90명인데 그중에 30명이 의대나 치대, 약대에 갔다. 15명은 증권회사나 은행에 다니거나 변리사·회계사·판사다. 30명 정도가 나처럼 과학 분야에 남아 있다. 솔직히 의대 간 친구들이 부럽긴 하다. 돈 잘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니까”라고 말했다. 왜 의대에 가지 않았느냐고 묻자 “부러운 건 부러운 거고 난 이게(과학) 좋다.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고 전공해보니 적성에도 잘 맞는다. 사실 성적이 좋았던 친구들은 대부분 의대에 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과학을 정말 좋아하거나 자기 소신을 가진 친구들은 이쪽에 남았다”고 답했다.

강씨가 일하는 태양전지 연구실(지도교수: 신소재 공학과 김동환 교수)에는 석사·박사·박사후 과정 등 34명의 연구원이 근무하고 있다. 인원이 많아 5개 팀으로 나눠 연구실 3곳, 실험실 2곳을 사용한다.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고려대 공학관 234호 태양전지 연구실을 찾았다. 학교 밖은 온통 연말 분위기로 가득했지만 10여 명의 학생이 사용하는 연구실은 차분했다. 책상마다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가 놓여있고 책꽂이에는 전공 서적이 가득 꽂혀 있었다. 연구실 한쪽에는 매트리스와 이불이 쌓여 있었다. 밤새워 실험을 하거나 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아 연구실 바닥에서 잘 때 이용한다고 했다.

박사과정에 있는 박성은(28) 연구원은 “공대 연구실은 빨간 날이 따로 없다. 매일 빡빡하게 돌아간다. 대한민국 공대 석·박사 과정 학생이라면 누구나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공부할 것”이라고 했다. 박씨를 비롯한 태양전지 연구실 연구원들은 매주 월요일 지도교수와 회의를 한다. 그 주에 연구할 방향을 논의하고 실험 장비도 점검한다. 박씨는 지난 화요일과 수요일 실험실에서 태양전지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을 마친 수요일 저녁에는 실험 결과를 정리하고 다른 논문에 나온 결과와 비교했다. 목요일에는 논문과 인터넷 자료를 찾아 정리했고 금요일에는 한 주간의 실험·연구 결과를 지도교수에게 브리핑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박씨는 “자기 생활도 없고 공부도 힘들다. 하지만 취직을 하더라도 학사와 석사, 석사와 박사는 대우가 완전히 다르다. 지금 이 시간을 잘 이겨내면 훨씬 더 좋은 미래가 온다는 생각으로 지낸다”고 말했다. 그는 “‘공대의 위기’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위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이해는 된다. 우리가 다른 분야에 비해서 돈을 못 버는 건 절대 아닌 것 같다. 다만 공부하는 양이나 투자한 시간에 비해 사회적으로 대우를 못 받는 것 같다. 정부나 회사 높은 사람들 중에 공대 출신이 몇이나 있는지 보면 힘이 빠질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태양전지 연구실 지도교수 김동환(51) 교수는 ‘공대 위기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언론에서 하나의 현상만 보고 공대가 위기다라는 기사를 쓰는데 그런 기사가 오히려 공대생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실험실에서 열심히 공부 잘 하고 있는 학생들이 ‘공대가 위기라는데 여기 있는 나는 바보인가’라는 불필요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위기가 없다는 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분명 이공계에 위기가 있었던 건 사실이고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이건 관리해야 할 위기다. 노력해서 보완할 정도의 위기지 난리 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공대 대학원 한 학기 등록금은 약 700만원이다. 연구실에 따라 등록금 일부 혹은 전부를 지원해 준다. 등록금에 약간의 생활비까지 보조해 주는 연구실도 있다. 돈은 정부나 기업과 연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받은 인건비로 충당한다. 공과대학의 다른 연구실에서 박사 과정 중인 한 연구원은 “우리 연구실은 등록금에 한 달에 100만원 정도 생활비까지 지원해 준다. 하지만 등록금을 자기가 내야 하는 연구실도 있다. 연구원 대부분은 수입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연구실도 빈익빈 부익부화돼 가는 것 같다. 학교, 전공, 교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돈이 되는 분야 연구실에 프로젝트가 많이 몰린다. 아무래도 지원이 좋은 연구실로 학생들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원 학생들은 정부의 이공계 지원 정책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공과대학의 박사과정 연구원은 “정부에서 이공계 지원을 하기는 한다. 그런데 그 지원이란 것이 결국은 프로젝트인데 이것을 준비하기 위해 행정적인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생각보다 이런 일이 꽤 많다. 정작 연구에 방해가 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오후 3시 공대 별관 302호에 있는 다른 연구실을 찾았다. 태양전지 연구실 소속 연구원 중 주로 석사 과정 연구원들이 사용하는 곳이다. 34명 연구원 중 4명의 여학생이 있는데 그중 박효민(26) 연구원을 만났다. 2010년 석사를 마친 그는 내년부터 박사과정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공대가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 취직 걱정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의사나 변호사도 예전 같지 않다. 취직으로만 따지면 문과가 더 위기가 아닐까. 이공계가 어렵다는 게 고정관념처럼 자리 잡아 자꾸 이런 말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에게는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은 문과 대학을 졸업한 뒤 얼마 전 회사에 취업했다. 박씨는 “부모님한테 ‘나한테 조금 더 투자해요’라고 말은 하지만 내가 언니인데도 아직까지 집에서 도움을 받는 점은 가끔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같은 연구실에 근무하는 김성탁(25) 연구원은 “남자의 경우 그런 고민이 더 심하다. 군대 다녀와서 박사에 들어가면 보통 30살 정도인데 나이는 차고, 다른 분야 친구들은 회사 입사해서 돈 벌고, 부모님은 퇴직하시고, 결혼도 해야 하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계속 공부만 해도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 혼자만 생각하면 박사과정까지 계속 공부하고 싶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까, 나도 나중에 어떤 선택을 할지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해 석사과정 첫 해를 마친 그는 “고생하면서 공부 많이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 출신으로서 성공하는 것에 비하면 많이 모자란다. 정부나 대기업 연구소들이 대부분 지방에 있는 점도 우리들 입장에선 아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한양대 공과대학에서 석사를 마친 이태훈(29)씨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한다. 그는 회사에 입사하면서 느낀 점을 들려줬다. “공대 쪽 사람들은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면서 20대에서 30대 초반을 보낸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을 만나거나 다양한 경험을 못한다. 그렇게 석사, 박사를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면 다른 직원들과 융화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결국 공대 출신끼리만 모이게 되고 사내에서 힘을 갖지 못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위기의 원인이라면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실 연구원들에게 공대에 진학한 이유를 물었다. 수능 점수에 맞춰 공대에 지원했다는 학생이 많았다. 박효민 학생은 “솔직히 고등학교 땐 의대에 가고 싶었는데 점수 맞춰 공대에 왔다. 막상 와 보니 공대가 적성에 잘 맞고 재미있다. 그래서 중간에 의대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우리 반 절반이 의대에 가고 싶어했다. 의대 가야만 성공하고 이공계 가면 실패하는 것마냥 인식하는 게 큰 문제인 것 같다. 과학이 적성에 맞는 학생도 많은데 우리 교육현실에선 그것을 알기 힘들다. CEO를 얘기하지만 CTO도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알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동환 교수는 “돈과 명예만 있으면 사람이 만족하는 건 아닐 것이다. 자신의 일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 이공계 위기를 얘기할 때면 취직, 장학금 같은 것만 말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학생들이 자기 일에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연구도 마약 같은 면이 있다. 하다 보면 재미있고 좋아서 계속 빠지게 된다. 우리 학생들이 신바람 나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현욱 기자 g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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