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가 졌다 … 고교 1학년 김현영에게 … 경기장이 웅성거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지난 20일, 전국남녀스프린트 빙상선수권대회가 열린 태릉국제빙상장. 여자 1000m 1차 레이스 결과가 전광판에 뜨자 빙상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16세 국가대표 후보 김현영(서현고·사진)이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상화(21·한국체대·1분20초25)를 누르고 1위(1분20초13)에 오른 것이다. 한 빙상 관계자는 “독보적 1위였던 상화가 하도 분해 라커룸에서 스케이트를 집어 던졌다더라”고 전했다. 다음 날 2차 레이스에서는 독이 오른 이상화(1분19초78)가 김현영(1분20초06)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김현영은 2위로 들어왔지만 기록은 전날보다 0.07초 더 앞당겼다.

 홀로 빙판을 지친 뒤 기록을 재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좀처럼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김현영이 ‘밴쿠버 영웅’을 제치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상화에 이어 대회 종합 2위를 차지한 김현영은 내년 1월 네덜란드 헤렌벤에서 열리는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 출전 자격도 얻었다.

 놀라운 성과를 이루고도 정작 본인은 담담하다. 김현영은 “상화 언니 주종목은 500m다. 1000m는 주종목도 아닌 데다 그날 상화 언니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면서 “어쨌든 이번에는 진짜 이겼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면서도 욕심은 숨기지 않았다. 그는 “엄마·아빠가 정말 좋아하셨다. 엄마는 내가 상화 언니를 이기자 눈물을 흘리셨고, 아빠는 ‘갖고 싶은 것 다 사주겠다’고 하시더니 정말 최신 스마트폰을 사주셨다. 아직은 때가 아니지만 언젠가는 상화 언니와 붙어 진짜 멋지게 이겨보고 싶다”고 했다.

 김현영이 스케이트화를 신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이전까지 검도·태권도·발레·수영 등을 즐겼던 ‘스포츠 소녀’는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였던 외삼촌 오희완씨의 손에 이끌려 빙상장을 찾았다. 그는 “삼촌이 ‘현영이는 인라인스케이트를 잘 타니까 스피드도 시켜보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이후 흥미를 느껴 계속 타게 됐다”며 “처음에는 선수까지 될 생각은 없었는데, 꾸준히 타다 보니 어느새 선수까지 됐다”며 웃었다. 김현영은 이어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금메달이 쏟아지니까 사람들 관심이 폭발적이더라. 상화 언니, 모태범·이승훈 오빠가 정말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김현영의 꿈은 2014년 소치 올림픽 출전이다. 그는 “올림픽에서 내가 또 금메달을 따면, 스피드스케이팅도 쇼트트랙처럼 꾸준한 인기 종목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올림픽을 바라보며 훈련을 열심히 한다. 인터뷰가 쏟아지고 팬들이 알아보는 즐거운 상상도 한다”고 말한 뒤 “사실 선수들한테 올림픽 메달 꿈이야 당연한 거고, 내겐 그보다 더 큰 목표가 있다. 그건 일급 비밀이다. 앞으로 스케이트를 더 잘 타게 되면 그 꿈도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수줍어했다.

 김현영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올라운드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 예선에 출전하기 위해 중국 하얼빈에 가 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확실하게 두각을 나타낸 뒤 세계 무대에서 또 한번 놀라운 소식을 가져오겠다”고 당당한 각오를 밝혔다.

온누리 기자

김현영은 …

▶생년월일 : 1994년 10월 19일

▶체격조건 : 1m65㎝, 52㎏

▶혈액형 : B형

▶출신학교 : 과천초-과천중-서현고(1학년)

▶내가 본 나의 성격 : 어떨 땐 소심하고, 어떨 땐 대범하다

▶취미 : 만화책 보기(특히 스포츠 만화)

▶최근 애창곡 : 좋은 날(아이유)

▶ 2010 중앙일보 올해의 뉴스, 인물 투표하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