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가위바위보’로 메달 조작, 쇼트트랙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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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런 식으로 선수들을 키워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제아무리 금메달을 많이 딴들 무슨 가치가 있는가. 더구나 1988, 92년 겨울올림픽에서 연속 우승해 국민적 영웅으로 각광받던 코치가 범행을 주도했고, 또 다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현역 국가대표 코치까지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개탄만 하기에는 사태가 자못 심각하다. 이러고도 우리 빙상계가 스포츠 정신, 올림픽 정신을 들먹일 수 있겠나. 비슷한 범죄·부정이 어디 빙상스포츠만의 일이겠는가.

 코치의 강압으로 특정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포기하는 등 담합과 승부조작 파문으로 쇼트트랙계가 홍역을 치른 게 불과 8개월 전이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이번 비리는 입상자에게 국가대표 선발전 출전 자격과 체육특기자로의 대학 입학 기회가 열리는 고교부 쇼트트랙 대회에서 저질러졌다. 고3 선수 중 대입에 필요한 전국대회 수상 경력이 부족한 제자들을 입상시키기 위해 저학년 선수들을 기권시키고, 가위바위보로 메달 순위를 미리 정해 실제 대회에서도 그대로 등수가 나왔다. 학부모 등과 검은 돈은 오가지 않았는지, 다른 스포츠 종목들은 또 어떤지 철저히 밝혀내야 마땅하다.

 근본적으로 승부조작은 지도자·선수·학부모 간 이해관계가 맞물리기 때문에 빚어진다.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쇼트트랙 강국이라 일단 국가대표가 되면 세계대회 메달 획득은 물론 병역혜택·연금까지 챙길 수 있다. 특기자 대입 문제도 걸려 있다. 그러니 일부 선수·학부모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코치들도 ‘실적’을 위해 비리에 뛰어드는 것이다.

 스포츠 정신을 고취하자는 식의 처방으로는 약효를 기대하기 힘들다. 엄한 감독과 처벌이 있어야 한다. 대한체육회와 감독관청인 문화체육관광부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 이번처럼 국제대회 입상 실적 등으로 체육연금을 받던 사람이 불법·비리를 저지를 경우 연금 혜택을 과감히 박탈·축소하는 게 옳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었을 때’라는 현 규정으로는 부족하다. 대입·병역면제·평생연금처럼 누구나 선망하는 혜택이 범죄·비리에도 무사하다면 납득할 국민이 없을 것이다.